본문 바로가기
소소한 일상

진관사 찻집에서....토요일밤의 마실....

by 까망가방하양필통 2003. 2. 14.


진관사 찻집에서....토요일밤의 마실....

 

서울길이 지아무리 복닥거린다더라도
빈맘으로 가는길은 여간 헐거웁지 않다.
토요일 오후나절....이발을 하고선 가푼한 괜한맘이 動하여,
아는길도 아닌, 저만치 있을법한 그런 찻집하나...찾아 나선다.

신호 바뀌면 서고, 앞차따라 뒤이어가고, 행여 끼어들라치면 멀찌기
넓혀주는....줄줄이 미어지는듯한 신작로따라 이렇듯
" 아니면 말고..."하는 편한맘 가짐이 차라리 신기하고지고...헛허허허허

곡이 약속이나 기약이 있슴도 아니고 다만 거기 그곳에 들러고프다하여,
들어본적이 있씀만으로도 그냥 길따라 나선다.

성산대교 건너, 상암운동장을 끼고 돌아...응암동 지나 연신내가 저만치,
문득, 지나는터에 갈현 공사현장엘 들러볼까나 하여 잠시 들르니
숙직하는 김반장이 긴장하여 의아해 한다.
그냥, 그냥이라고...
지나는 길에 수고하시는데 인사나 할겸 잠시 들렀노라고 하여도
불쑥 나타난 내가 마치 암행 순찰인냥 내심 은근히 불안한 눈치다.
그냥 휑하게 가면 더 조바심 할까봐 부러..
"아따, 여기는 이뿐 아가씨도 없수?"하여 커피를 시켰다.
에고...앳띤 아가씨의 맨살 무르팍이 봄심을 한껏 앞당기는듯하여
비좁고 어정쩡한 콘테이너가 비로서 홀가분 해진다.

현장을 나와 구파발쪽으로 가면서 아까 가로등밑에서 돋보기로
애써 찾아둔 진관사를 感으로 방향잡아 간다.
(노트에 서울지도가 안보여서 돋보기로 봐야 잔글씨가 보인다)

 

 

 

(퍼온사진임-진관사찻집)

 



U 턴도 하고 샛길도 거스르고, 어찌어찌 거의 다다랐다 싶은데
웬걸 북한산공원 매표소를 지나친다.
다소 난감하여 돌아나오면서 등산로를 보니 바로 저만치에 진관사란다.
착실하게 주차장에 차를 대고선 깔끄막(언덕길)을 어둠을 세며 걸어내니,

진관사는...고려 현종때 진관국사를 기리어 창건하였다하나
6.25 사변때 소실된것을 이진관 스님(비구승)이 다시 재건했다한다.

절 입구에 맞붙어선 작은 한옥 한채가 있는데 개조를 한 찻집이다.
언젠가 괜찮더라며 귀띔해준 바로 그 찻집인듯 싶다.

커피숍이나 까페같은데는 잦은 발걸음이었지만 이렇듯
순수한 전통찻집은 무척 희귀하게 들러보는터라 선뜻 밀치고 들어가기가
조금 머쓱하고 멈칫해진다. 비록 낡은집채이지만
단정하고, 창호지에 싸인 백열등이 소박하여 좋은 맘이다.

뜸을 들이며 메뉴를 빤히 쳐다보는데,
개량한복을 입은 여인(주인인듯한)이 요즘 많이들 십전대보탕을
드시는데 어떻겠느냐고 권하였지만 기어드는 목소리로
"여기...서...국화차를 한잔 하고픈디요?" 하고 국화차를 부탁하였다.

(여기 찾아드는 언저리와 길목엔 유난스레도 백숙, 감자탕, 추어탕,
보신탕등의 탕집들이 눈에 많이 띄었기에 순간적으로 십전대보탕에
거부적이지 않았나 싶다. 걸죽한 건데기가 아닌 이밤은
말간 맹물같은 맘이고 싶었달까?)

조금후, 친절히 찻잔 뚜껑을 실눈섶만큼만 제치고 마신후
다시 우려드시라고 쬐고만 주전자를 놓고 간다.
촌놈, 한바터면 홀짝 홀짝.....
커피 마시듯 들국화 이파리를 죄다 입천장에 바를뻔 했다^^

시킨대로 입술을 가만히...살곰히 한모금.
코끝에 스쳐나는 진한 향내가 저으기 그윽하다.
찬찬히 한모금, 한모금...다시 우려내어 한모금...또 한모금....
건너 맞은편에 걸린 詩 한수를 읊조리며
입안 가득이 번지듯 스며나는 둔탁한 국화향내음이
참 소박하다는 그런기분이 좋다.

 

 

 



다실은 땔감을 줏어 모으며
구리 주전자를 향해 불을 키우니
솔바람 소리너머 물이 끓네
좋은 차는 좋은 사람과 같아
나에게 한바탕 웃음을 주네
처마끝에 고드름은 詩興을 움직이어
한번 읊조리고 차 한잔 마시니
여운이 저으기 만족스럽네....



하얀 사기 백자 찻잔에 청묵빛 연꽃 그림이 참 단아하게 다가와
물끄러미, 마냥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치 山寺의 요사채에서 마루에 정좌하여 차 한잔 하는 그런 착각에
촛불하나 벗하여선 차분한 맘가짐을 한다.
길게는....올핸 부디 無難하여지기를 .....
짧게는....오늘도 무사이....

사람 살아기는데에 있어서 어찌 어려울 難이 없겠느냐마는 다만
좀 적게 부딪치고 멀리 돌아내는, 그리고 부딪치더라도
요령껏, 슬기로이 헤쳐 나갔으면 하는 바램일게다.

말갛고 조용한 밤이다.
봉창너머로 기척이라곤 전혀없는, 다만 까만바람 지남만이 가만히 보인다.
저켠에 해맑은 피부의 비구스님이 엇비친다.
정말 조지훈님의 승무에 나오는 그 모습 그대로
반지르하고 파르라니 깎인 머리박사가 퍽 단정하고 단아하다.

"스님, 잘 쉬었다 갑니다, 이제..저...이만 하산 하렵니다"
속으로 혼잣말하고선
이내 터덜터덜 깔끄막을 걸어 내려온다.
밤바람이 하나도 안춥다.

토요일 밤 마실....오늘도 좋은 맘
2003.2.13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