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작사 신해철)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 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
저런 노래가 있었을까?.....신해철의 "아버지와 나"....
찬찬히 읽어내리고, 한번 더 눈으로 보고,
또 다시 노랫말을 가슴으로 쓸어내릴제,
돌아가신 아버님의 모습이 새록하게 오버랩 되어진다.
엊그제 김포 들꽃풍경에서 회원 세분의 출판 기념회가 있었는데
그날 사회를 보던 내 모습이 찍혀진 동영상에서 아버님의 생전의 모습과
흠칫할정도로 많이 닮은꼴임에 매번 신기해 한다.
"아버지".....아.버.지. 라는 세글자의 단어 한마디에는
갓태어난 아기의 뽀얀 살내음과 청년시절의 씩씩함과 중년에 이르른
노숙함과 노년에 말라진 피부에 검은 버섯핀 모습을 상상하면서
아들녀석의 뒤따르는 모습과 손주녀석의 닮은 꼴속에 회한을 갖는다고나 할까?
그럴것이다.
어른이 되어져감을 느끼고, 설자리가 좁아진 테두리에서 노랫말에서처럼,
마침내 침묵으로, 무너져 가는 모습을 감추려는 안간힘도 어쩔수 없는 모습이다.
이대목에서 진한 커피 한모금이 땡겨진다.
커피를 저어서 한대 꼬나물고....부시시, 볼펜을 찾으려 두리번 한다.
"어딨지? 방금 여기에 둔것 같은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말고 순간 일기를 쓰고 있다는 착각에 방금 쓰다만 필기구를
찾고자 두리번하는 모습에 아연해하며 그만 헛허허허 웃고만다.
아버지라는 낱말 하나에 그만, 맨정신에도 벌겋게 취하고 만다.
아래 글은 ... 65세의 연세에 홀로 23일간의 국토종주를 마치시고,
가족과 함께 네팔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를 하시고 금번에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간하신 황안나님의 자제분께서
적은글과 사진을 퍼온것이다.
그만한 나이때에 아버지를 보는 담담함과 갈등....
그리고 연로하신 아버님의 회한에찬 어깨동무 미소에서
훗날에 나의 모습도 거기 있다.
< 퍼 온 글 >
네팔 여행은 큰 그림은 초이와 내가 정하고
트레킹 코스등 세부 일정은 여행사에 맡겨놓은 상태였다.
현지에 도착해서 보니 우리 일정에 베이스캠프가 빠져있었다.
일반인인 우리가 정상은 못가더라도 베이스캠프까지는 가야 의미있지 않을까 싶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코스를 상의했다.
베이스캠프를 가자니 카트만두 구경을 제대로 못하겠고
일정대로 하자니 이 곳까지 와서 산 언저리만 돌다가는게 아닌가 아쉽기도 해서
여러 의견이 교차를 했다.
아버지, 어머니, 나와 초이의 의견이 서로 다르게 오락가락했다.
특히 나와 아버지의 의견이 충돌했다.
네팔에 오기 전, 여러 곳에 기고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 아버지의 의견은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일정대로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순간 아버지의 모습이 내 눈 가득하게 자리 잡았다.
어느 덧 머리가 다 큰 자식 앞에서 결정권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
내 아버지, 혹은 우리 집안이 결코 가부장적 분위기는 아니건만
그 순간 내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아프고 당혹스레 다가왔다.
보름남짓 다닌 네팔 여행에서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고산지대를 다니시던 아버지는 세 번을 넘어지셨다.
그 후 다녀온 영하삼십도 태백산을 오르던 새벽,
아버지의 발걸음은 유난히 휘청거려 보였다.
많이 손 시려워하시는 것 같아 장갑을 바꿔끼자고 했더니
말?戮? 받아드시던 내 아버지.
많이 약해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홀로 설 수 없던 어린 시절, 내 아버지가 날 지켜주셧 듯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지켜드려야 할 때가 왔음을 새삼 느꼈다.
헤밍웨이에게 반한 아버지의 꿈은 킬리만자로를 가보시는 것이었다.
네팔에서만 해도 올 여름에 킬리만자로를 꼭 가자던 아버지는
이제 그 말슴을 하지 않으신다.
이제 체력의 한계를 느끼시는걸까?
여행이 끝날 무렵, 아버지는 내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어깨에 손을 올리시며 내 손을 잡으시던 아버지.
참 따뜻함을 느꼈다.
말 수 적고 무뚝뚝한 내 성격 탓에
아버지와 따뜻한 정을 나누고 느꼈던게 얼마만이었던가......( 끝 )
PS.
아래 사진은 "17년전의 두남자" 라는 제목으로
글쓴이의 고등학창시절 사진으로 단칸방에서 궁색스레 살면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부자간의 합창이 참 정스러우면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황안나님의 회고록에 적은글에서 ....
단칸방에서 저기 보이는 녹슨 철제 책상 아래로 발을 모두어 웅쿠리고 잤다하네요.
잠시
커피 한잔의 상념이었습니다.
그리고
커피 한잔 하실분은...뜨건물은 여기 끓여 놨구요, 커피. 설탕은 여기에..컵은 ....
헛허허허허
2005. 8 . 27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
음악 : Am I That Easy To Forget / Engelbert Hamperthink
-
아버지..
답글
제가 친정 어머니를 너무나 많이 닮앗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해가 지면 골목길 구두 발자욱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가
초인종 벨 소리에 반가이 뛰쳐나가 대문을 열면
꼬깃꼬깃 만원 한 장을 엄마 몰래 손에 쥐어 주시던 아버지께
감사함을 눈빛 사인으로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퇴근 후 반드시 저를 불러 발을 씻기워 달라 하셧고
그날 잇엇던 학교일을 조곤조곤 물으시곤 하셧지요
숙녀가 되고서는 늦은 귀가에 주무시지 않고
거실에 앉아 계시다 무언의 야단을 치시기도 하셨습니다
시부모님 공경하며 잘 살아야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시댁으로 인사갈 때
동행하신 아버지의 신신당부엿지요
저 시집에 두고 가는 아버지의 무거운 발길과 눈물 훔치시던 모습이
시댁마을에 두고두고 이야기거리가 되기도 햇지요
지금도 제 머리 쓰다듬으시며 우리 ?숙이 최고다 ..
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 -
열살 아래의 아이들 한테 아버지는 세상에서 최고이고
답글
십대 후반쯤 되면 아버지는 세대차이가 나는 꼰데,그러나
아직은 아버지가 필요하고
이삼십대에는 아버진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구세대..
그런데 4~50대가 되니 다시금 아버지한테 의지하게 된다.
"여보,이 일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아버지께 여쭈어 봅시다.."
제 나이 사십 중반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는데 그때 저는
"아이고,이제 난 (아버지 안계신 세상)어떻게 살아가나...!"싶더군요.
아버지란...헛허허허~~~ 그렇다는 게지요..~ -
아버지가 떠나신후로...
답글
아버지 소리가 가슴을 퉁 하고 떨어뜨린답니다.
아버지 살아계셔 아버지 뵈러 가는 사람들 보면
얼마나 부러웠던지...
대입준비할때 돌아가셔서...
지금껏 아버지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아버지 귀여움 독차지 한 셋째딸이었는데...
지금도 문 열고 들어오실거 같은 아버지랍니다.
우리 자식들의 가슴에 깊게 새겨진 아버지의 교육과
자상한 모습, 음악 좋아하시고 낚시 좋아하시며 엄하시고
다정다감하셨던...지금도 젤로 존경하며 사랑하는 아버지
너무나 그립습니다.
마냥 생각하면서... 이 밤을 또 보내야겠네요~!! -
Boramirang2005.09.01 04:42 신고
까망가방하양필통님!
답글
구월의 이른 새벽에
님의 방안에서 따뜻한향기가 묻어나와서
잠시 머물다 갑니다.
부자간의 정이가득 묻어 있는 이곳이
필시
이 계절에 일을(?) 치를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까망가방하양필통...이라는
이쁜닉으로
대작을 올리셔서 감동을 주는 한 마당입니다.
저는
작년 5월에 아버님과 이별했었습니다.
늘 아버님의 따스한 정을 느끼곤 했습니다만
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한 일이
가끔씩 생각나며 가슴을 아프게 하지요.
아버지란
우릴 비추는 빛이어서
아버지의 아픔은 별로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께에 걸쳐진 손을 보면서
다정다감함을 보며 서걱임을 느낍니다.
나의 새끼들...
내가 그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아버지인지 반성하고 가는 구월 초하룹니다.
구월에는 어버이를 더 기리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글 올려주신 까망가방하양필통님께 감사드리며...
'느끼며 생각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속에 정갈한 그릇을 하나 갖고 싶다. (0) | 2005.09.06 |
---|---|
"만들수만 있다면....아름다운것만을...." (0) | 2005.09.02 |
" 언제 한번....." (0) | 2005.08.22 |
"A lover's concerto" (0) | 2005.08.10 |
편지얘기....연안식당의 순무 (0) | 2005.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