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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나들이

파주 - 황희정승 유적지 2015. 9. 2

by 까망가방하양필통 2015. 10. 18.

 파주 - 황희정승 유적지  2015. 9.  2

 

파주시 파평에 하수관거공사 현장엘 방문하다.

천둥 번개가 오락가락하는 폭우임에도 공사는 악조건 하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납품된 자재에 대해서 품질적인 이의가 있어서 해명및 설명차 방문한것이다.

 

억수로 비바람 치는날.....천둥....번개.... 지금껏 이렇게 가까이서

천둥소리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다행히 이해를 해주고 설명이 잘되어서 무난하게 마무리를 하였다.

 

 

 

 

  

 

 

 

당동 IC로 되돌아 나오는길에 인근에 있는 황희정승 유적지를 들렀다.

비에 쫄딱적은 신발과 바지도 말릴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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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선생 유적지

 

경기 파주시 문산읍 사목1190번지

 

 

 

                                                                                   

 

 

                        

 

 

   

 

 

                       

 

 

 

 

 

   

 

 

 

 

                                        

방촌 황 희(尨村 黃 喜)

 

조선시대 최장수 청백리 정승

 

1353(공민왕 12)~1452(문종 2),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尨村), 석부(石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균비(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현대부판강릉대도호부사(資憲大夫判江陵大都護府使)

군서(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고,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다.

 

1376(우왕 2)복안궁녹사(福安宮錄事)가 되었다. 1383년에는 사마시,

1385년 진사시에 각각 합격하였고, 1389년에는 문과에 급제한 뒤 

1390(공양왕 2) 성균관 학록이 되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門洞)에서 은거하다가 1394(태조 3) 조정의 요청과

두문동 동료들의 천거로 성균관 학관이 되었으며, 세자의 스승인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

겸임하였다. 이후 조정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쳐, 6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태종의 신뢰를 받았으나 1418년 세자(양녕대군) 폐출의 불가함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태종의 진노를 사서  폐서인이 되어 교하(交河)와 전라도 남원(南原)5년간 유배되었다가

태종의 건의로 세종에 의해 다시    복직되었다.

이후 굶주림이 장기화 된 강원도에 관찰사로 나가 백성의 어려움을 잘 살피고

민심을 얻었으 며  동시에 세종의 신뢰 또한 얻게 된다.

 

이후 이조판서와 우의정 좌의정 겸 세자사(世子師:세자의 스승)등을 지냈으며,

1431(세종 13) 69세의 나이로 영의정이 되었다.

이후 18년동안 세종을 잘 보필하며 태평성대를 이끌다가 87세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은퇴한 뒤에도 국가중대사의 경우 세종의 자문에 응하는 등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파주 문산 반구정에서 갈매기와 같이 여생을보내다가

향년 90세에 서거하여 파주 탄현 금승리에 안장되었다

 

                                              

 

유품전시

         

 

 

 

서각대(犀角帶)-조선시대 관리가 허리에 두르던 무소의 뿔로 만든 띠

                                                      

 

               

                                                                                                                                                                                  

                       

 

                      

                     

단벌 정승 황희(A prime minister in his only suit)

 

 갈아 입을 관복이 없어 바지 속통만 입고 입궐한 황희

 

진눈깨비가 내린 어느 겨울날, 퇴궐한 영의정 황희가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 서둘러 옷을 뜯어서 빨아주시오. 밤새 말리고 꿰매면 내일 아침 입궐할 때

입을 수 있을 것이오."

영의정 황희는 겨울옷이 한 벌밖에 없었다.

그래서 빨랫감을 부인에게 내어주고 속옷차림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대감마님, 속히 입궐하라는 어명이십니다." 부인은 당황해 하며 말했다.

"에구머니, 이 일을 어쩐단 말입니까? 어서 입궐하셔야 하는데 무얼 입고 들어가신단 말입니까?"

황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는 수 없소. 그 솜이라도 가져오시오."

"솜이라니요?" "바지저고리를 뜯어 빨았으면 솜이라도 있지 않겠소?"

"대감도 참 딱하십니다. 어떻게 솜만 꿰매 입고서 입궐하시겠단 말씀입니까?"

"그럼 어쩌겠소? 어명이니 입궐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벌거벗은 채 관복만 걸칠 수는 없는 일이니, 어서 솜을 가져오시오."

 

황희는 부인이 가져온 솜을 몸에 둘렀다.

"부인, 굵은 실로 좀......." 부인이 바지 솜과 저고리 솜을 실로 얼기설기 이어 주자,

황희는 그 위에 관복을 덧입고 서둘러 입궐했다.

 

대궐에 들어셨을 때는 이미 세종이 여러 신하들과

경상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칠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황희의 관복 밑으로 비죽이 나온 하얀 것이 얼핏 보였다.

세종은 그게 양털인 줄 알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것 참 이상하도다. 청렴하고 검소하기로 소문난 황 정승이 양털로 옷을 해 입다니...'

회의가 끝나고 세종은 황희를 가까이 오라고 일렀다.

 

"과인이 듣기로 경의 청렴결백이야말로 모든 이의 귀감이 되고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찌 오늘은 양털 옷을 입으시었소?"

황희는 당황하여 가까스로 대답했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실은 저어......이것은 양털이 아니오라 솜이옵니다."

 

"? 솜이라니? 왜 솜을 걸치고 다니시오?"

", 전하, 신은 겨울옷이 한 벌뿐이라......,

오늘은 마침 일찍 퇴궐했기에 그 옷을 뜯어서......."

"이리 좀 더 다가오시오, 이럴 수가!"

세종은 황희의 옷 밑으로 삐져나온 솜을 만져보았다.

 

"아무리 청빈한 생활을 한다 해도 어찌 단벌로 겨울을 날 수 있겠소.

여봐라!" 황 대감에게 당장 비단 열필을 내리도록 하라!"

황희는 정색을 하며 아뢰었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방금 내리신 어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지금 이 나라 백성은 계속된 흉년으로 헐벗고 굶주리는 자가 많사옵니다.

이런 때 어찌 영상인 신의 몸에 비단을 걸치겠습니까?

솜옷 한 벌로도 과분하오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과연 경다운 말이오. 과인이 용포를 걸치고 있음이 부끄럽소이다."

결국 세종은 비단을 하사하라는 명을 거두었다고 한다.

 



유적지 보수중

 

 

 

 

당시의 농자재와 멍석, 짚신등 을 전시해둠

 

 

   

 

 

 

                        

 

 

                    

 

  

 

 

   

 

방촌선생의 현손으로 소양공 월현선생 부조묘

                    

 

 

   황희선생 영당             

             

 

                       

                       

 

 

영당 내부 영정과 제실

 

 

 

 

 

 

 

 

 

경모제

 

황희선생 일대기와 조선시대 의복이 전시됨

영당 내부 영정과 제향

 

 

 

 황희선생 동상

                       

 

 

 

 

김종서 길들이기

 

어느 날 회의 때 김종서가 술에 취해 비스듬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황희는 하급 관원에게 일렀다. "지금 병판의 앉은 자세가 바르지 않으니,

의자 다리가 잘못된 모양이다. 어서 고치도록 하라!"

 

그말을 들은 김종서는 머리끝이 저절로 쭈뼛해짐을 느끼고 자세를 바로 고쳤다.

회의가 끝난 후 황희가 자리를 뜨자. 김종서는 검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6진을 개척할 당시 밤중에 적의 화살이 날아 들어 책상머리에 꽂혔어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식은땀이 등을 적시었소이다."

 

김종서가 강원도 지방을 순찰하고 돌아 올 때

토종 꿀 한 단지를 병졸을 시켜 황희에게 보냈다.

"이 꿀은 뇌물로 받았거나 공짜로 받은 것이 분명하다.

또 나라의 녹봉을 받는 공인을 사적인 심부름꾼으로 부리다니!"

황희는 호통을 치며 꿀을 돌려보냈다.

 

어느날 좌의정 맹사성이 황희에게 물었다.

"김종서는 당대의 이름난 재상이고, 공이 추천한 사람인데 어찌하여

구박이 그리 심하시오?"

황희는 앉아 있던 의자를 툭툭 치면서 대답했다.

 

"김종서는 이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이기 때문이오.

김종서는 성품이 거만하고 대사를 도모하는 데 너무 과격하여 앞으로 자중하지 않으면

반드시 낭패를 볼 때가 있을 것이오.

그러므로 그 자만심을 꺾고 모든 일에 경솔하지 말라는 것이지

결코 그가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오."

 

 

 

 

반구정 과 앙지대

 

추적추적 나리는 빗길따라 앙지대로 오른다.

 

앙지대(仰止臺) 오르는돌계단

 

                                            

 

 

 

반구대에서 올려본 앙지대 (앙지대가 조금 높은곳에 있음)

             

 

 

 

 

  반 구 정

 

 

                       

 

 

 

반 구 정

 

 

허목(許穆)의 반구정기(伴鷗亭記)에  "조수때마다 백구가

강위로 몰려들어 모래사장 벌판에 가득하다" 고 하였다.

 

앙지대에서 내려본 반구정

                   

                       

 

 

이곳은 임진강변 경관이 좋은 언덕위에 지은 정자로서

황희선생은 고향인 개성을 우러르며 이곳에서 여생을 마무리 하신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황희선생의 묘

황희선생 유적지로부터 약 8km 떨어져 있는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하고 있음

 

                                            

 

 

 

황희선생 유적지를 돌아 보았습니다.

 

분단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철조망이 반구정 언덕과 임진강을 가로 막아 있어서

낙조가 들면 애잔한 슬픔과 아픔, 그리고 붉게 타들어가는 노을을 한꺼번에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임진강 건너편(희미하게 보이는곳)이 장단이며 그 너머가 북한땅이라 합니다.

잿빛하늘과 희뿌연한 임진강을 굽어보며....잠시 상념에 잠겨봅니다.

 

2015. 9.. 26일 정리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

 

 

 

 

 

 

 

  •  
  • 아연(我嚥)2015.10.18 19:17 신고
    일과 함께 병행하시면서 다녀오신 황희정승 유적지
    다녀오신 부연설명으로 공부할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답글
  • 수수꽃다리2015.10.18 20:07 신고

    황희정승 하면..
    청렴한 정치가 탁월한 정치적 식견이 있는 재상 뭐 이런 정도가 떠오릅니다.
    빗물이 묻은 돌계단이 을시년 스럽습니다.^^*

    답글
  • 나비구름2015.10.19 14:07 신고

    조선시대 의복 감상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의미 있는 곳에 다녀오셨군요

    답글
  • 수보2015.10.19 16:09 신고

    황희정승 ~ ~ 참 많이 배우고 했던 황희선생이네요.
    그의 유적지가 있었군요.
    파주 ~ 참 먼곳이긴 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있음 꼭 가보고 싶습니다.

    답글
  • 반딧불이2015.10.20 21:11 신고

    파주면 이곳에서 가까운 곳이네요. 근데도 전 한번도 못가봤습니다. 이 가을에 가볼 수 있을 가 모르겠네요. 참 바쁜 가을을 보내게 되는 해이다보니. 출장길에 늘 여행삼아 다니시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일도 늘 즐겁게 하실 것 같아요.

    답글
  • 청람2015.10.21 14:23 신고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청렴의 대명사 황희 정승
    황희 정승이 반구정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물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런 분이 역사에 남을 우리 조상님인데 말입니다.
    안개 자욱한 반구정을 보니
    묻어 둔 추억 한장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