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회룡미술대전 - 의정부예술회관 (사진일기)2015.8.30
의정부 예술회관에서 전국회룡미술대전이 열렸다.
매년 열리는 지역행사인데 가까운 거리이므로 관람차 가보았다.
의정부 예술회관
석재로 지어진 외관이 서초동 예술의전당 느낌이 약간 스쳐난다.
행사 공연, 이벤트등을 알리는 현수막이 즐비하다
그만큼 활발하게 활동이 되어지는것 같았다.
회룡문화제
회룡문화제는 의정부시의 대표축제로 시민의날 기념식과 함께 행사를 한다
"회룡"의 뜻은 태조 이성계가 아들들간의 왕자의 난에 분노하여
함흥으로 내려가 칩거를 하고 있던 중, 태종 이방원이 함흥으로 차사( #함흥차사 )를 보내
아버지인 이성계에게 용서를 구하고 정계에 복귀할 것을 호소하자 노여움을 풀고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호원동 부근 고을에 머물렀는데 이를 "용(왕)이 돌아왔다"는 뜻에서
회룡골로 불리웠으며 그 지명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시관
미술대전 이지만 작품 전시는 서예, 문인화, 동양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문인화란 (백과사전에서 옮김)
조선시대의 많은 문인사대부들도 그림을 남겼다.
초기의 문인화가 강희안(姜希顔)은 자신이 화가로서 이름을 남기는 것을 꺼려
자손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모두 없애버리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중국으로부터 남종화가 유입되면서 더욱 많은 문인화가들이
활약하게 되었으며, 이들은 화단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강세황(姜世晃),
이인상(李麟祥), 조영석(趙榮祏), 심사정(沈師正)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19세기의 김정희(金正喜)에 이르러 조선의 문인화는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문인화는 기법에 얽매이거나 사물의 세부 묘사에 치중하지 않았다.
단지 그리고자 하는 사물의 진수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학문과 교양,
그리고 서도(書道)로 연마한 필력(筆力)을 갖춘 상태에서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준비하여 ‘흉중성죽(胸中成竹)’의 영감을 받아 즉시 그린다는 것이다.
문인화가들은 필력이 도(道)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여도 그림에 기교가 나타나지 않도록
치졸(稚拙)한 맛을 살려 그림으로써 천진(天眞)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사물의 내적인 면을 표현하는 사의(寫意)를 중시하고, 이와 반대되는
형사(形似 : 사물의 외형을 닮게 그리는 것)를 추구하지 않았다.
아래 작품은
들꽃풍경 카페에서 함께 지내온 회원의 작품이다.
부채에 국화를 그려서 선물해주신것을 아직 잘 간직하고 있다^^
미술대전을 관람후 사진전시회고 감상하였다
2015. 9. 17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
'소소한 일상.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워터코리아 (국제 물산업 박람회) (일산 킨텍스) 2015.8.25 (0) | 2015.09.21 |
---|---|
영업직에서 실질적으로 손을 떼고 (계약직변경).....2015.9.17 (0) | 2015.09.17 |
철원 도피안사가는길에.....2015.8.29 (0) | 2015.09.17 |
가평 출장길에 - 청평호반따라....(사진일기 2015.8.21) (0) | 2015.09.17 |
강화도 동막해수욕장, 분오리돈대, 정수사 그리고 황산도 (사진일기) (0) | 2015.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