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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나들이

나제통문(羅濟通門)을 지나며...용인-무주출장 ( 1 )

by 까망가방하양필통 2007. 3. 5.

 나제통문을 지나며 ... 용인 -  무주  출장 ( 1 )

 

비가 나린다. 

겨우내 가뭄을 해갈 하는양

봄비가 주룩주룩  여름비같이 나린다.

 

빗길을 달려  간다. 

앞서가는 차량의 바퀴에서 비산되는 뿌연 물보라를 뒤따르며.....

 

 

 

출동

* * * 상수도 공사 현장....  작년에 시공한  * * 구간에서  연결부위  1소가 터졌다는 

전갈에 긴급 출동을 한다.  제조사로서는 참 난감한 사항이라 할수 있는  사고이다.

대체로 원인규명이  시공사측의 시공상 문제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하여튼  수도관이

터졌다는것은  향후 영업에 악영향이 끼치므로   바짝 긴장하지 아니할수 없는 일이다.

 

 

비가 주룩주룩 나리지만 방문객 차량들이 즐비하다.

저 가운데엔 우리와 치열한 경쟁사 차량도 있겠지..... 

 


 

회의를 마치고....나서는참에

야산 자락에 하얗게 ....소리없이 비껴가는 비구름을 본다.

여전히 나리는 빗살을 바라보며  한개피 사루어 낸다.


  

 

 

무주 출장

 

버걱대는 윈도우브러쉬 소리에 망연한 빗길을 가는


 

 

 


잠시 빗줄기가 소강 상태에  산 허리에 걸쳐진 하얀 구름이 

조바심속에 바빡 긴장하여 가는 길을  쏴악 가셔내는듯한  청량감이.....

그 마음이 고마와 찰칵~


 


 


문 닫은지 오래된듯한 휴게소.....을씨년스런 건물에  너른 주차장이 휑하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터널이 뚫리고, 외곽도로가 비껴가면서  지나는  찻길이 바뀌다보니

오가는 차들이 뜸해지고....장사가 안되고, 적자가 늘고 종당간엔 저런 모습으로

방치 되어지고 만다.  출장을 다니다보면  저런 휴게소, 가든 등을 곧잘 마주치게 된다.

 

수첩에 메모를 한다.  훗날 어느땐가엔  늙으막에 한켠을 치우고선  별장삼아....

쥔장이 들으면 웬 복장 터지는 소리냐고 눈을 부라릴지 모르지만  빈집으로 나 두느니

풀도 뽑고, 너덜대는 문짝도 못도 박고....등도 밝히고, 사람훈기도 쐬이고....

그러고 보니 전국에 나만큼 부자인 사람도 없을것이다. 헛허허허허


 

 

반딧불 체험 학습장  - 일부는 아직 공사중

무주군의 청정 축제로서 해마다 6월초에  반딧불이 행사를 한다고 한다.

 

 

 

 

羅濟通門

 

(백과사전에서)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과 무풍면을 가로지른 산줄기의 암벽을 뚫어 만든 문.

윗부분에 '羅濟通門'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높이 3m, 길이 10m의 인공동굴로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입구에 위치하며 덕유산국립공원에 있다.
이 통문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당시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신라와 백제의 국경 관문으로 이 통문을 중심으로 동쪽은 신라 땅이고 서쪽은 백제 땅이었다.
나제통문이란 이름은 이러한 연유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신라와 백제 양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사실은 〈삼국사기〉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지금도 이 통문의 양쪽으로 위치한 무풍방면의 이남(伊南)과 무주방면의 새말[新村]은
행정구역상 무주군 소천리에 속하지만 언어와 풍속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한다.

 

입구 나제통문 휴게소


 

 

 

 


 

나제통문 문지기(할아버지^^)

빗자루로 빗물 고인것을 쓸어 내고 있다.


 

신라쪽(무풍면) 에서  바라본 나제통문


 

백제쪽(설천면) 에서 바라본 나제통문

 

 

 

나제통문에 대한 첨 알게된  자료.....

 

이 굴은 "기니미굴"로 일제시대(1910년경) 일본놈들이

인근 금광에서 채굴된 금을 용이하게 옮기고

그 지역의 농산물과 임산물을 옮겨가기 위하여 뚫은 굴로서 이름이 "기니미굴"이었다
굴을 중심으로 한 도로를 기준으로 위쪽마을은 "기니미 마을" 아래쪽은 "이미리 마을"이다

도로개설 기록은 무주군청지인 "적성지"에도 기록되어있다

이러한 굴이 언제 "나제통문"으로 바뀌었는가 ?
바로 무주구천동 33경을 만들면서 1963년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때부터 기니미굴이 "나제통문"으로 둔갑을 하여 교과서에 버젓이 등장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국사교과서 때문에 학생들의 수학여행 단골 메뉴가 되어버렸다
이 나제통문이 진실을 아는 어느 뜻있는 한분에 의해서 강력하게 항의를 받아 어느날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   그분이 바로 "오재성 선생님" 이십니다

카페 - 한민족 역사   (글쓴이 단군 왕검)

 

 

 

신라쪽(무풍면쪽)에서 바라본 나제통문


 

나제 통문을 지나

무풍쪽으로....그리고 덕산재를 넘어....

 

 

 

박인희 은희 어니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