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막 말
정 양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읽는다
real smoking
가을 저녁에
김소월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 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 마을은
성긋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言約)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 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우리가 인연이었다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을텐데...
목마름
김정희
누워서
마루 깊숙이 들어와 노는 햇볕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너와 여행가고 싶어
어느 봄이 말한다
장롱 안의 옷들과 가방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신발이 귀를 세우고
가슴속에서 화석이 되어가던 숱한 길들이 출렁출렁
간이역을 매달고 달리던 기차소리 아득하게 날자
깨어나는 몇몇 절간들
푸릇한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강물 강물
우포라나 감포라나 부다페스트 하노이 DMZ라나
하는 것들이
봄꽃송이들처럼 터진다
마루는 순식간에 아 수 라
몽매한 봄아
무시로 아우성치는 통증들은 어디다 두고
저렇게
허공을 트느라 가쁜 숨 몰아쉬는 목련 빛들은
또 어디에다 걸어두고
떠나자는 것이냐
내 길들은 접힌 지 오래인데
신도림역에서
세편의 詩 와 세 여인의 모습을 오버랩시켜봅니다.
위 세편의 詩,
"토막말", "가을저녁에" 그리고 "목마름"은
우연찮게 접한 詩임에도 순간의 어떤 스침속에 이미지가 적나라하게, 그리고
결코 안그런척 지나치기엔 마음 한켠 어디엔가 刻印이 되어지네요.
그래서,
간혹은 멀거니 응시하듯....촛불 그림자를 비켜내며 눈길로 훑어 내리기도 하지요.
세장의 사진은
어느날엔가엔 들꽃풍경 카페에서 "파아란"님이 애써 구하여 올려놓은신 사진중에서
(원작자를 알수 없어서 명기를 못합니다)
번뜩 뭔가가 짚힘이 있기에 (골라서) 퍼왔습지요.
한참을 지나쳐서...(임시보관함에 눙쳐진)詩를 가만히 음미하듯 읊조리는데
불연, 퍼다놓은 석장의 사진이 묘한 뉘앙스로 오버랩 되어지기에
시집 장가 보내듯 이리저리 골라서 짝을 지어 봅니다.
한동안
뭣이라고 곡이 따지듯 이유를 들지는 못하지만 ....
망연하고 손끝에 힘이 빠지고....촛불을 눈동자에 모두우며 애써 집중도 해보았지만
거참 석연찮고, 맴돌기만하고,흐느적거리기만 하였다네요.
물론 개인적으로 연초에 한햇동안의 살림 밑그림을 챙기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여기 블로그에 선뜻 마음이 나서지지가 않아 제 딴에도 저으기
답답하기도 하고 다녀가신 여러 친구님들께도 민망스럽다 하였습지요.
오늘, 이밤사,
세편의 시와 세장의 사진이 (제가 보기에) 내심 맞아떨어지는것 같은 기분에
모처럼만에 기운을 얻습니다.
헛허허허허, 뭐, 그렇다는겝니다.
그간에 다녀가신 여러 친구님들께 변변한 인사도 못드렸습을 양해 바라면서....
언제나 좋은 친구님들....자주로 뵙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함은 견지해 나가야겠지요.
2005. 2.13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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