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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들살이.캠핑

정릉(貞陵)...둘레길 산책

by 까망가방하양필통 2012. 11. 18.

정릉(貞陵)...둘레길 산책

                                           2012.11.3. 토

정릉(貞陵)의 유래

 

 

태조 이성계가  극진히 사랑했던 현비(신덕왕후)가 갑자기 승하하자

태조는 도성내  현 덕수궁 뒤편,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능역을 조성하고  

봉분 우측에 훗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마련하여   능호를 정릉(貞陵)으로 정하였다.

아울러 능의 동편에 흥천사(興天寺)라는 절을 지어 재궁으로 삼고 능침사찰로 하였다.

 

그러나 잘 조성된 정릉은 신덕왕후의 왕자인 방번과 방석이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살해되고

태조의 원비 신의왕후의 다섯 번째 소생인 태종이 즉위하면서부터 푸대접과 수난을  면치못하였다

태종은 1406년(태종 6) 정릉(貞陵)의 능역이 도성 안에 위치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능역 또한 너무 넓다는

논란이 있자   태종은 정릉(貞陵) 100보 밖까지를 주택으로 허가 하였으며,

 

또한 청계천 광통교(현재의 광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능의 석물이었던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그 밖에 목재나 석재들은 태평관을 짓는 데 쓰게 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백성들은 왕비의 능을 구성하던 석재들을 밟고 다니게 되었다.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태조는

애써 조성한 사랑하는 아내의 능이 초토화되는 것을 보고 남몰래 눈물지었다고 한다.

(이일로 태조 이성계는  고향인 함흥으로 내려가고마는데 여기서  "함흥차사"라는 속담이 나오게 되었음)

 

정릉(貞陵)에 대해서 역사적 고찰을 해본다면  태조이성계와 신덕왕후의 인연으로 유명한 버들잎 신화로부터 

전처(신의왕후) 소생인  태종 이방원이 후처 소생의 이복동생들을  축출(살해)한 왕자의 난을 연계하여

살펴본다면 좀더 이해가 될것 같아서.....

 

 

광 통 교

(청계천 복구로 지하에 묻혔던 광통교가 모습을 드러냄-물론 부분적이지만)

(예전에 청계천 갔을때 찍어둔 사진을 옮김)

 

   

 

광통교 석물  - 고의적으로 거꾸로 쌓고  뭇백성들에게 밟고 지나도록 했을까.....

권력의  영욕과   무상함을 보는듯하여 씁쓰레하기도하다.

   

 

 

 

최초 정릉(貞陵)이 있었던 일대는 지금까지 정동(貞洞)으로 불리고 있다. 그로부터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 신덕왕후는 현종에 의해 복권되면서 그 능이 현재(성북구 정릉(貞陵)동)와 같이 재조성되었다.

 

 

현재의 정릉(貞陵)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로 12길 103(정릉동 산 87-16)

 

ㅇ 해설시간 : 매일 2회 (입장료 1000원)
    오전 10:00 / 오후 2:00 (월요일 해설 없음)  - 능침관람은 오후 2시 해설시만 가능

 

 

 

 

 

 

조선왕릉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됨

 

貞陵으로 가기위해 작은 돌다리를 건너다

   

 

비록 貞陵은 규모나 위치적으로 타 왕족릉에 비하여 다소 격이 떨어진듯 보여지지만  정릉 앞 마당이 너른 공터이고

정릉 주위로 둘레길이 있어서 지금에 이르러선  소담한 햇살에 산보객들이 있어서 적적하지 않을것이라 여겨진다.

 

                              

 

                                                                  버들잎 설화 -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운명적 만남

                                                                 

 

                               재실  오른쪽 끝에 정릉이 조그맣게 보임

                              

 

                              관람시간이 아니어서 출입못함 - 멀리서 찍은 정릉

                             

 

정릉(貞陵)   

정릉은 단릉으로 조성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이다. 처음에는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에 능역이 조영되었으나,

태조가 승하한 후, 원비의 태생인 태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신덕왕후는 평민으로 강등되고, 현재의 위치로 천장되었다.

따라서 왕릉제인 병풍석이나 난간석은 봉분에서 사라지고, 4각 장명등, 고석, 상석 등만이 원래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장명등은 고려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  위사진 1점은 문화재관리청 홈피에서 퍼온 사진임 (문제시 삭제함)

                             

태종은 1406년(태종 6) 에 신덕왕후의 분을 둘러싼 12지신상이 새겨진 병풍석을 뽑아다가 돌다리(광통교) 를

만드는데  쓰게 하였다하니.... 지금 위 사진처럼 병풍석(봉분을 둘러싼 석조물)이 없고 흙으로된 봉분이다.

 

신덕왕후의 원을 씻어주며 내린 비

태종은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태종과 자신의 친어머니 신의왕후만을 함께 모시고, 신덕왕후의 신위는 모시지 않음으로써,

그녀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시켜 버렸다. 이로써 태조가 사랑했던 신덕왕후는 죽은 후에도 새어머니를 미워한 아들에 의해

한참을 푸대접 받다가, 그로부터 260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 다시 정릉의 상설을 복구하고 종묘에 배향을 결정하게 되어

그 한을 풀게 되었다. 이 때 정릉(貞陵)에서 성대한 제사를 지냈는데, 그날 정릉(貞陵) 일대에 많은 비가 쏟아져서

사람들이 이를 ‘세원지우(洗寃之雨)’라고 불렀다고 한다. 세원지우란 신덕왕후의 원을 씻어주는 비라는 뜻이다.

 

 

   

 

 

   

 

 

                              

 

 

산책길로 접어듭니다 정릉(貞陵) 둘레길이네요

2.5 ~ 4 Km 정도,   50분에서 한시간 남짓 소요되는 알맞은 산책길입니다

정말.....  1,000 원(입장료) 의 행복같은 ,,,,,^^ 도시락 싸들고 한번 더 들려보고픈....그런 편한 공원 같네요

 

                              

 

 

                                                                                        

산책길을 거슬러 오릅니다.

얕으막한 뒷산정도의 산책길입니다.

 

                             

 

 

                             

 

 

   

           

 

   

 

 

                                                                                        

                                                                                                                                                              

곁길로 들어서서 한참 걷다가 길이 없어서  되돌아 나오고,

막다른 산책로 끝에 청년이 우두커니  휴식을 취하고 있네요.

초행길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하여 앞서가는  여학생의 뒷꽁무니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따릅니다.

 

그 학생(직장인?) 은 혹여 뒤따라 오는 내가 은근히 신경 씌였을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뒤따르면서 멧돼지나 뱀이라도 나오면 어떡허나....아니면 불량한 사람이라도 불쑥 닥치면 ....

하는 마음에,  내딴엔 여차하면.....헛허허허.

 

   

 

다시 걷고 또 걷고.....

   

 

 

 

한개피 땡겨지는 충동이....(금연지역임)

 

푸석 해진 꽃들과 바튼 계곡에 낙엽들에서 가을 가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벌써....한해가 다가는듯한 마음입니다.  잠시 걸터 앉아 쉽니다.

돌아보면 녹녹치 않았던 직장생활.....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거개가 비슷한 마음일테지요.

 

유적을 돌아보며 역사적인  고찰과 더불어 둘레길 산책도 하고.....한껏 여여하게 보여지는 나들이이자 여유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엔 직장생활에  압박되고 긴장되는...그리고 눈치도.....또,  업무흐름이 전산화로 더해질수록

순발력도 더디어지고 내심 버겁기도 하네요.  이제는  한해 한해를 계약직으로 연장하는듯한,,,그런 기분이네요.

어쩜,  호젓한 소롯길을 걸으면서   안그런척,  엄습하는 자괴감을  희석하는 몸짓 같다고나 할까요.

헛허허허, 그렇다는게지요

 

그래도 이만한것만도 다행이라 자위하면서.......

"오래오래...., 많이 많이....감사하게 하여주세요" 라고  걸음따라 기도 합니다.

 

 

 

 

한바퀴 돌고 내려오니 제법 상기되네요...^^

 

처음에 건나왔던 돌다리를  다시 건너서 .....

 

부가정보 : 아리랑고개
아리랑고개는 돈암 4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동소문동과 돈암동을 지나 정릉길과 교차하는
아리랑시장 앞까지에   이르는  폭 15m 길이 1천4백50m의 지선 도로이다. 예전에는 정릉(貞陵)으로 가는
길의 고개라 하여   정릉고개로 불렸으나,  1926년 이후 아리랑고개로 불렸다.
아리랑 고개로 불리는 데는 춘사 나운규와 연관이 있다. 그 연유는 일제때의 영화인  나운규(1902∼1937)가
이곳에서‘아리랑’영화를 촬영했기 때문이다. 1926년 10월 단성사에서 개봉됐던 영화 아리랑은 조국을
잃은 백성의 울분과 설움을 보여주어 민족의 저항의식을 고취, 한국영화의 신화로 남아있는 작품이다.

 

정릉에서 올려다본   얕으막한 아리랑고개 능선에 해가 뉘였뉘엿 넘어가네요.

 

 

 

길상사 갔다가 아리랑고개 넘어 오는길에 정릉에  들려 산책하다 .

 

2012.11.3.토.  까망가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