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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며 생각하며

전곡리 선사유적지 -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발견

by 까망가방하양필통 2023. 5. 21.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고고학적으로  동아시아 (한국) 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된

세계적으로  중요한 ( 획기적인 )   선사유적지입니다.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한탄강에서  야영을 하면서   몇차례 방문을 하였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삼아  구경을  하였던것 같습니다.

 

선사박물관은  코로나19로 인해  수년째  개관을 안하여 관람을 못했는데

이번 축제 기간에  방문을 하여 관람 하였습니다.

 

선사유적지를  관심을  가지고서  관람하면  할수록   그간에 미처 몰랐던 

고고학에서 획기적인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선사유적지임을 알게 되면서   

이번 기회에  그동안의 자료를  나름 정리하면서   역사 여행을 하여봅니다.

 

 

 

 

한탄강이 휘감아도는 전곡리 선사 유적지. 선사박물관

 

 

 

 

  전곡리 선사유적  발굴사  

 

전곡리 선사유적은 1978년 한탄강 변에서  당시 동두천주둔 미군인  " 그렉 보웬 "에 의하여  처음 발견되었다.

그는 수습한 석기를 기록한 보고서를 세계적인 선사고고학 전문가였던 프랑스의 프랑수와 보르도 교수에게 보냈고 

보르도 교수는 당시 서울대학교 박물관장 이었던 김원룡 교수를 소개했다. 이 과정을 거쳐 강변에서 발견된 석기들은

당시 서울대학교 박물관장이던  고(故)김원룡 교수에게 신고되었고,  영남대학교의  정영화 교수에 의해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로  학계에  최초로 보고되었다.   발견 이듬해인 1979년  첫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그해 국가 사적 268호(778,296㎡)로 지정됐다.

 

2022년 현재까지 근 50여년에 걸쳐 20회 이상의 시발굴 조사가 시행되었다.  전곡리유적  석기는  거의 대부분 

강자갈 돌로  만든  주먹도끼, 사냥돌,  주먹찌르개,  긁개, 홈날, 찌르개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가  발견되었으며 

유럽과 아프리카의  아슐리안 석기 형태를 갖춘  주먹도끼가  동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다.

전곡리 선사유적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밝혀 줄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발견으로  한국과 동아시아 지역의 구석기 문화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되었다.

 

 

 

전곡리 에서 출토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분포도

 

 

 

 

 

 

 

 새로운 발견, 전곡리유적  

이 주먹도끼의 학명은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다. 프랑스에서 많이 발견되어 그 지방 이름을 따 학명으로 사용한다.

학계에서는 이 주먹도끼가  타원형 또는 삼각형 모양으로 양쪽면을 모두 고르게 손질가공하여 구석기 시대에

상당히 발달 된 형태의 도구로 인정한다.  하버드대 모비우스 교수는  이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인도 서쪽 지역인

아프리카 유럽에서만 발견된다는 학설을 내세웠다.   이를 근거로 서양인들은 유럽이 문화적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근거로 삼았다.  그런데 전곡리에서 이 주먹도끼가 발견됨으로 그 학설이 깨지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세계 고고학계는  주먹도끼가  유럽과 아프리카에만 있고,  동아시아에는 없다는  고고학자

모비우스의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을 때였는데   보웬의  발견으로  모비우스의  학설은  폐기되고, 

세계 고고학 교과서는 새로 쓰게 되었다  그때부터 세계 구석기 지도에 한국의 연천 전곡리가 표시되었다.

 

 

아슐리안  주먹도끼와  하바드대 모비우스 교수

 

 
 
 

 (  에피소드  ) 

 
놀라운 사실은,  그렉 보웬은  한국 주둔 중 만난  연인  이상미 씨와 함께  1978년 경기도 연천 전곡리   
한탄강변  유원지에서   데이트를  하는중에   코펠에 커피를 끓이기 위해  주변의 돌을  주워 모으다가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 하였다는 것이다.

솔직히 보통 사람은 전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것이었지만, 이런 중요한 도끼를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운 좋게도  보웬이  마침  고고학 전공자였기 때문이다.  군대에 갔던 것도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하고 입대한 것이었다. 
보웬에게도 이 유적지 발견은 큰 명예였으며  이 공로로 세계 고고학계에 알려져 제대 후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각종 유적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우연히 나간 데이트 장소가  구석기 유적지였다는 것과, 데이트를 하던 중 여자친구가 수많은 돌 중에서
주먹도끼를 주워왔는데,  때마침 같이 있던 남자친구가  고고학 전공자였자는 조건이  모두 맞아 떨어진 점에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 이 부분은 2022년 10월 23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2005년에는  1977년  이후 27년 만에 연천 구석기 축제에 초청받아 방한하기도 했다.

방한 당시 이선복 교수는  "당신이 아니었으면  전곡리의 역사는 지금도 잠들어 있을 것" 이라며

유적이름을  보웬 유적지로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2009년 만57세의 나이로 그렉 보웬은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 세계 학계 통념 뒤집어 "

당시의 신문 보도및 최초발견을한 그렉보웬

 

당시 뉴스및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신문 보도

 

 

 

     발굴 과정및 현장     

 

 

 

 

발굴 회의  ( 우측이   김원용 서울대교수 )

아슐리안 주먹도끼(우측)  발굴 내용과  전곡리 주먹도끼 ( 좌측)  발굴 내용

 

 

전곡리 발굴 현장 

출토 유물  (  이후에도 4,000 여개가 넘는 다수유물이  출토되었음 )

 

 

 

 

 

 

 

발굴당시 발굴을 총괄하시던 김원용 사울대박물관장의  흔적(유품)

 

 

김원용 서울대 교수(박물관장)

고고학자로, 한국 고고학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고고학과 미술사학 및 박물관과 문화재 관련 업무의

대한민국 초창기 중요 인사이다. 당시 얼마없던 한국 고고학계 인물들 중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자 국제통이었으며

지표조사는 물론 발굴까지 진행하면서 고고학의 행정과 교육 두 분야에서 공헌하였다.

 

중요 발굴 유적은

1952년 경주 노서동 쌍상총, 1959년 감은사지, 1961년 양주 수석리, 1963년 광주 신창동, 1967년 서울 암사동,

1969년 부산 동삼동, 1971년 공주 무령왕릉, 1972년 화순 대곡리, 1973년 경주 천마총, 1974년 경주 황남대총,

1975년 부여 송국리, 1976년 경주 안압지, 1979년 연천 전곡리, 1984년 춘천 중도, 1985년 서울 몽촌토성 등이다.

 

 

 

김원용교수 추모비

김원용교수의 유언에 따라 무덤 없이 화장 후 유적지 내에 산골하였다

 

 



 

 

  그렉보웬과  부인 이상미씨  

 

2005년  연천 구석기축제에 특별 초빙을 받아  한국 연천을  방문하신 때   모습

 

그는 한 인터뷰에서 주먹 도끼를 발견했을 때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황량한 벌판에서 주먹도끼를 봤을 때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해낸 것인지 믿을 수 없었고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렉 보웬님이 인생에서  두 가지 큰 행운이 있었다고 했는데,

 

첫번째가 한국에서 주먹도끼를 발견한 것. 
 
두번째가 한국에서 부인인  이상미씨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라고....
 

 

 ( 이런  웃지못할 사건도 )  일본의 후지무리 신이치의 사기극에 대하여.....

 

전곡리 주먹도끼는 27만전의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물은 70만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비해 일본은 4만전 유물만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자존심이 상한 일본은 열심히 구석기 유물을 찾게된다.

그 결과 후지무라 신이치가 70만년전 석기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동안 발견된 구석기에 의심을 품은 기자에 의해  잠복 끝에 돌을 묻고 있는 후지무리 신이치를

촬영하고  이를 공개했다.  그동안의 발견이 물거품 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람은 80만년 전까지 끌어 올리려다

들통이 난 것이다.

이 조작 사건으로인해 일본 고고학계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위 내용은  고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사실에 기반한  내용이며  

 

 

아래  내용은  (이하 내용)

구석기  선사유적지에  내에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을  전시 조형 한  모형물 과

선사박물관  전시된 인류역사와 화석등의  내용이다.

 

 

 

제 30회 연천 구석기 축제 포스터

 

 

 

 

전시장 (입구)

구석기 시대의 전곡리를 형상화함

 

 

선사유적지 초입에  구석기인 캐릭터 (전골리안)

 

 

 

 

축제기간과  어린이날이  중복되는  좋은 날인데

그만  비가  주룩주룩  나려서  행사진행이  많이 취소되어  아쉽고 서운하다.

 

 

 

   유적지 내에  곳곳에  전시된   구석기시대  모형  

 

 

 

 

 

 

 

 

 

 

 

고인돌 사랑 ㅎㅎ ㅎ

 

 

 

 

 

 

 

 

뼈로 지은 움막

 

 

 

 

벤치에 앉아 사색을  하는 전골리안과 어깨동무를   ㅎㅎㅎㅎ

 

 

 

 

 

 

  선사박물관  관람  

 

몇번 방문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관람을 못하였는데

이제  코로나19 도  해제되고  구석기 축제를 맞아 오픈 하였다.

 

 

선사박물관 전경과  출입구

 

 

 

박물관 전시 

 

 

 

 

주먹도끼를 쓰던 사람들은  곧  선사람(호모 에렉투스)이다

그들은 단순히 돌을 깨뜨려 찍개를 만들어 쓰던 수준을 넘어  머릿속으로 미리 어떤 모양을 구상한 다음

만들 수 있는 주먹도끼를 만들었고, 이는 두뇌가 혁명적으로 진화한 덕분이라는 평가이다.

그 결과 불을 다룰 줄 알게 되었으며, 간단한 말도 쓰게 되었다.  이런 인류사의 큰 사건은

현재의 사람들과 같은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전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동굴과 동굴벽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굴벽화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상 (장신구) 와  청동기시대의 의상 (아래사진)

 

 

  아이스맨  .  외찌맨  

 

1991년 9월 19일.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경 사이의 알프스 산맥의 외찌 계곡에서

미이라로 발견된  시신이어서 아이스맨 또는 외찌맨으로 불리운다

외찌맨은 5,300년전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이다

 

복원한 외찌맨

 

 

 

 

 

 

    특별 이벤트   -       주먹도끼 ( 진 품 )  기념 활영    

 

이곳 전곡리에서  실제로 출토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모조품 아닌 진품임 ) 를 

직접 만져보고, 기념 사진을  찍으니 비로서 실감이 피부에   닿습니다^^

( 박물관장님께서  설명과 함께 직접   찍어 주셨다^^ )

 

 

 

 

 

 

한탄강 야영(차박)을 마치고 

전곡리 선사유적지와  선사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촉촉하게 비가 나려서    한산 한 분위기에서   차분하게  돌아본  유적지 입니다.

 

오래전에 찍어둔 사진들과  인터넷을 검색하여  관련 사진과 자료를 

추가 보완하면서   정리를  해봅니다.  

소홀하게  여겼던 것이  밍구스러웁지만   이제라도  미처 몰랐던것들을 

알게되어  참 다행이라 여깁니다.

이번 기회에 저도 공부 많이  했습니다^^

 

끝으로  주먹도끼를 기적적으로  발견하여  고고학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기신 

그렉 보웬 님께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2023.   5.  21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