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춘양 백두대간수목원 현장 출장 -김삿갓유적지 탐방
2014. 3. 10
서울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영월대리점 경유하여 봉화 춘양면 서벽리 백두대간수목원으로 향함강원도 영월에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가는길은 88번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도중에 김삿갓면을 지난다.
봄볕이 좋은 동강따라가는 88번 도로
88번도로
동강은 갈수기인지라 수량은 적었지만 다순 봄볕을 받으며 여여하게 흐른다.
영월에서 김삿갓면을 지나 꼬부랑 내리 고갯길을 넘어서 우구치마을을 지나 다시 도래기재를 넘으면 춘양면 서벽이다.
그곳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을 조성하고 있는 현장에 미수금을 독촉하러 가는길이다. 먼길이다.
내리고개
88번도로 영월에서 춘양가는길 - 구간별로 확장을 하는중이지만 지금의 2차선 도로가 한적하고 운치 있는데...
우구치리(소의 입처럼 생겼다고해서 붙여진 마을이름)
88번 도로 우구치리 마을 삼거리에서 상금정길로 접어들면 영월 상동으로 이어지는 988번 도로이다.도로라기보다는 거의 임도 수준이다.
도래기재 (동물통행로)
도래기재 (해발 750M)
도래기재는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와 우구치리를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백두대간 산행을 하시는분들은 꼭 지나쳐야하는 주요 거점이기도 합니다.고갯마루에는 금정굴로 불리는 터널이 있어 예전에는 사람과 차량이 통행하였으나 근래에 폐쇄되었다.
도래기재 휴게터 - 정자 뒤켠으로 금정굴이 있음
마냥, 쉬고 싶은
햇살들고 펑퍼짐한 땅이나 여백을 보면 ...더더구나 호텔같은 정자를 끼고 있는 고개마루라면
그냥....그냥....텐트 펼치고 두팔벌려 드러눕고픈 충동이다.
지금은 비록 아니지만 이렇게 기록을 꼼꼼히 적어두면 나중에 쉬이 찾아올수 있겠다 싶어서....
금정굴의 고드름
벽진정사 고택
먼길, 시간 맞추어 오느라 새벽에 부산하게 달려온터 조금 일찍 당도하다.
잠시 인근에 있는 ...옛고택에서 머무른다.
햇살이 나즉하고 정적이 멈추어진 .... 때론 그 자체가 쉼이자 휴식이기도 하다.
서벽초등학교와 입구에 느티나무와 서벽항일의거기념비
)서벽에서 전개된 의병운동과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비이다.
1908년 5월 18일 민긍호 의병대의 중군장中軍將 변학기, 성익현, 김상태 등 이 이끄는
300 의병은 지금의 기념비가 서 있는 곳의 30여 그루 느티나무 아래 몸을 숨겨
진입하는 일본군에게 화승총으로 공격하여 40여명을 생포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살하였다.
일제 헌병대는 여기 느티나무를 造船용목재로 쓴다는 핑계로 모두베어버리고 성황당에 바짝 붙어있는
느티나무 한그루는 신목神木이라하여 다베지 못하고 반쪽만 끊어가고 나머지 반쪽을 남겨서 지금에 이르렀다
백두대간 수목원 조성공사 현장
산림청은 지구온난화로 산림생태계의 다양성이 자꾸 줄고 있음에 따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5179ha 안에
백두대간 생태계와 식물자원 등을 보전, 관리하는 시설들을 갖춘다.
조감도(2012년 기공-2015년 준공예정)
한창 공사중인 현장
공사업체와 미수금 상환에 대한 조정과 협의를 마치고 되돌아 온다.
최선이 안되면 차선책으로라도 조율과 약속을 하지만 편치 않는 맘이다.
되돌아 오는길.....다소 진도 빠지고....갈길도 머잖코,
오후 5시....잠시 어디서 뉘여보고픈 마음이다. 조금 쉬어나 가자하는....
김삿갓 유원지로 향하다. 가는 길목이니 잠시 거닐어 보고자.
김싯갓 유적지 진입로
김삿갓유적지 가는길에 기념비와 돌탑
김삿갓유적지 입구
여인네의 버선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외씨버선길 13개 구간 중 12번째 길인 김삿갓 문학길
此竹皮竹化去竹 이대로저대로 되어가는대로
風打之竹浪打竹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飯飯竹竹生此竹 밥이면밥 죽이면죽 이대로살아가고
是是非非付破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저대로 붙여주세
賓客接待家勢竹 손님접대는 제집행세대로하고
市井買賣歲月竹 시장흥정은 그때의 시세대로하세
萬事不如吾心竹 모든일은 내마음 같이 못하니
然然然世過然竹 그렇고 그런세상 그런대로 살아가세
白髮汝非金進士(백발여비김진사) 머리가 허연 너는 김진사가 아니냐
我亦靑春如玉人(아역청춘여옥인) 나도 한 때에는 꽃다운 청춘이었다.
酒量漸大黃金盡(주량점대황금진) 술은 늘어만 가는데 돈은 떨어져
世事재知白髮新(세사재지백발신) 세상을 알 만하자 백발이 되었구나
한마디로 말하면, 김삿갓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생활 시인이었고
문학적으로도 모든 욕망을 초월한 세계적인 선(禪) 시인이었다.
明川明川人不明 漁佃漁佃食無漁 (명천명천인불명어전어전식무어)
명천은 생선이 많이 잡히는 곳이니 명천에 가면 생선만은 잘 얻어먹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명천에 들어서니 아무리 밥을 얻어먹어도 생선 같은 것은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김삿갓은 명천 고을에 대해서도 이렇게 비꼬아 주었다.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어전 어전 하지만 어느 집 밥상에도 생선은 없다."
落葉吟(낙엽음, 낙엽의 노래)
蕭蕭瑟瑟又斉斉(소소슬슬우제제) 소슬바람에 나뭇잎 펄펄 날리는데
埋山埋谷或没渓(매산매곡혹몰계) 산골짜기 메우고 물에도 떨어진다.
如鳥以飛還上下(여조이비환상하) 새처럼 아래 위를 훨훨 날기도 하고
随風之自各東西(수풍지자각동서) 바람에 불려 동과 서로 흩어지기도 하네.
綠其本色黄猶病(록기본색황유병) 무닢은 본시 푸르건만 병들어 누래진 것
霜是仇緑雨更淒(상시구록우경처) 서리 맞고 비를 맞아 그 모양 처량하다.
杜宇爾何情薄物(두우이하정박물) 두견새야 너는 왜 그다지도 박절하여一生何爲花花啼(일생하위낙화제) 지는 꽃만 슬퍼하고 낙엽에는 안 우느냐.
묘소 입구의 당집
난고정
현대판 김삿갓 최상락 (문화해설사)
위 사진 난고정에 상주하시며 김삿갓유적지를 담사하는 사람들에게 해설을 해준신다
거주는 이곳에서 약 2Km 떨어진 김삿갓주거지에서 살고 있음
이번 방문시에는 만나뵙지 못했다. 비수기철이기도 하고 시간도 이미 늦은시간이어서.
(아래사진 1점은 인터넷 기사에서 퍼온사진임)
(아래사진 1점은 인터넷뉴스에서 퍼온사진임)
난고정에서 내려본 유적지
김삿갓시인 묘소
김삿갓 시의 구비문학적 성격
김삿갓은 구비문학의 현장에서 여전히 구비시인(口碑詩人)처럼 대접받고 있다. 김삿갓 당대에도 그랬듯이 떠돌면서 다시 살려내는 구비시의 유통자인 동시에 창조자였다. 조선후기의 방외인(方外人)처럼 시대 밖에서 살았던 김삿갓이다. 김삿갓은 떠돌이 시인의 전형처럼 불리지만 실존 인물 김삿갓은 영월지역에서 무덤과 함께 설화를 가지고 있는 추모대상이다. 그는 문학의 힘과 낭만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인물이다. 그는 안동 김씨이며 호는 난고(蘭皐)이다. 또한 생몰연대가 확인되는 유일한 삿갓시인이다. 이는 그가 생전에는 물론 생후에도 다중의 문화현상을 나오게 할만큼 전승적 기반 속에서 시화(詩話)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가출한 김삿갓은 갓 대신 삿갓을 쓰고, 가죽 신발 대신 짚신을 신고, 하인배가 모는 말 대신 죽장을 짚음으로써
그가 사대부 층의 모든 규범을 거부하며, 조선 초 방외인과 같이 사대부 문화의 바깥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김삿갓의 시에는 퍼스나인 탈이 이중적(二重的)이다. 표면적으로는 말놀이의 흥미성을 드러내지만
이면적으로는 당대인의 현실적 목소리의 풍자성을 담았다. 이는 김삿갓 시에만 국한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후기 봉건적인 체제의 해체 조짐에서 부분적인 근대의 발아가 아닐까 한다.
일찌기 이응수가 그를 풍자시인, 파격시인이라고 부르면서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라는 유행가로
대중성을 얻게 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 이응수 - 김삿갓을 세상에 알리는 데 한평생을 바쳤던 저자의 김삿갓 풍자시 길라잡이 )
김삿갓 시는 19세기 봉건사회에서 다양한 인물 군상에 대한 인본적인 구비전승물이다.
그는 천재적 기질을 발휘하였는데 시의 놀이성을 최대한 살려 정통 한시와 언문풍월이 교차하던 시대에
언어의 변혁을 꿈꾸었다. 거기에는 자연친화적인 너무나 무소유적인 풍자관이 살아 숨쉬고 있다.
동시대인에게 잠시 빌렸다가 떠나는 지상의 물욕관을 비판하면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시의 칼날로 보여주었다.
그는 조선후기 민중계층의 시대적 한을 시의 말놀이 차원에서
풍자와 신명의 ‘굿놀이’로 승화시키면서 얼굴을 삿갓으로 가린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김삿갓 시의 구비문학적 성격
(이 창 식 - 세명대학교) 논문글에서 부분 발췌
김삿갓주거지 가는길 - (최상락 (문화해설사)가 기거하고있음)
거주지가는길목에...운치가 느껴진다...
다음에 들리면 션한 팥빙수라도 ^^
아직은 눈이 녹지 않아 개울건너 눈이 얼은 빙판 오르막을 4번째에 시도하여 간신히 오르다
이곳에서부터는 더욱 눈길이 미끄러워 차를 세우고서 걸어가려하였지만날이 어둑해지고 또 건성으로 후닥 둘러보는것이 예의가 아니다 하여 주거지방문은 다음으로 미루다.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我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아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 망혜...짚신 수성...물갈이 운심...구름같이 )
새도 집이 있고 짐승도 집이 있어 모두 거처가 있건만
거처도 없는 내 평생을 회고해보니 이내 마음 한 없이 서글프구나
짚신신고 죽장 짚고 가는 초라한 나의 인생여정 천리길 머나 먼데
김 삿갓도 이제늙었다.한조각 구름과 같은인생 한많은 일생이였다.
돌이켜보면 기구하기 그지없는 오십평생이였다.그러나. 그렇게도편안할 수가 없었다.
철학자 니체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라고 말했다. 길은 우리네 인생과도 같아 그곳에서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길 위를 떠돈 김삿갓의 길 위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김삿갓 유적지 ( 묘소및 거주지) 와 문학관은 몇번 들렸던것같다.
예전엔 "갔다왔네"라는 차원의 기록과 재미였다면 이번 방문은 김싯갓시인의 방랑의 내면적 정체성에 좀더 심취해보며 무소유적인 고뇌와 풍자에 대한 시를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고나....그랬다....
김삿갓유적 입구 내리천
감삿갓 주막
동강 노을
영월
동강휴게소에서 산나물 3 봉을 사고...흐믓^^ (가격이 참 착하다 한봉에 9천원)예전 죽령고개 휴게소에서 가게를 열지않아 산나물을 사지못하여 아쉬웠는데....
2014. 3. 16 까망가방입니다.
-
답글
봉화.
백두대단 수목원
그 곳도 이젠 봄기운으로
더 많고 다양한색감이 기대되는
곳입니다
그 곳을 향하며 보는 동강도
가본지가 두어 해가 지나갔고,
도래기재 고갯길을 보니 좋아보이면서도
이젠 어느 면까지도 도시같이
콘크리트로 모양을 잡은 것은 그렇고..
금정굴의 고드름을 보니
아..지금도 착한 역모양을 하고있는
이미지입니다.
백두대간 줄기에
거대한 수목원을 조성한다는 것,
앞으로 더 많이 해도 좋을 생태계와
식물자원 등이 있어 줄 예정이겠습니다.
앞으로는 김삿갓이 남긴
그 곳의 지역을 봄 지난 여름에
더 수려한 여행지로도 좋을 듯합니다.' -
역시
답글
필통님!
정말 필통님이세요,
갈길도 먼데
천천히 또박 또박 그 길에
있는.. 마음 드는 곳을 이렇게 관광이 아닌
여행을 만드시는지요.
저 같으면
그냥 휘릭 집으로 내 달릴텐데요 ㅎ
덕분에 김삿갓의 모든 것을 보고
새로 생길 수목원도 알아 갑니다.
봄빛
가득한 오후입니다.
또한 맛있고 좋은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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