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길목....운문사 설경 임문수 기자 사색만큼 화려하고 담백한 즐거움도 흔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자칫 궁상맞게 비쳐질지도 모를 사색은 아무래도 조용한 공간에서 거칠 것 없이 펼쳐보는 자신만의 시간이 제격이다. 도인이 아니고서야 복잡한 일상에서 스스로만을 독립시켜 사색의 삼매경에 빠진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러기에 가끔은 사색하기에 제격인 공간을 찾아가는 수고쯤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 굴절 없이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삼매경에 들 수 있다는 건 마치 호수의 수면에 투영된 영상을 보는 것과 같이 찰나일 수도 있고 허상일 수도 있다. 미미한 바람이라도 불어 수면에 물결이 잡히면 아무리 맑은 물이라도 반사의 능력을 잃게 된다. 사람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색이란 게 마치 그와 같다. 일상 속에선 미미한 바람처럼 또는 커다란 태풍처럼 끊이지 않고 다가오는 잡다한 일들이 물결로 밀려오기에 마음의 거울에 드러낸 자신의 실상을 본다는 게 쉽지 않다.
아직은 주변이 컴컴한 시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창문을 여니 어둠 저 쪽이 온통 흰색이다. 눈이다! 그 초롱초롱했던 별빛 다 제치고 밤새 분명 눈이 내렸고 그렇게 내린 눈이 온통 흰색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혼잡한 일상, 물결처럼 끊이지 않고 다가오는 번뇌를 잠시 억눌러줄 유리처럼 사색을 즐기기에 십상이도록 흰눈이 세상을 온통 뒤덮어 버렸다.
경내로 들어서니 눈을 치우고 있는 비구니스님들만 몇몇 보일 뿐 조용하기만 하다. 산사는 이래서 좋다. 더구나 이처럼 눈이 내리는 날 이른 시간은 조용할 뿐 아니라 단색에 드러난 단청들이 있어 더 좋다. 쌓인 눈에 주저 없이 드러낸 전각들의 그 화려함과 곡선미가 숙연함마저 들게 하니 더 좋다.
펼쳐본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독특한 즐거움이다. 이런 산사에 들어와 사색에서 얻는 겨울 맛은 무쇠밥솥에서 우려낸 숭늉처럼 그런 깊은맛이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일상엔 언제고 물결 같은 변화와 번뇌가 반복된다. 그 변화와 번뇌는 고단한 삶 자체일 수도 있고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인위적으로라도 그 변화와 번뇌를 억누르지 않으면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마음의 거울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하지 않다.
사색의 캔버스가 펼쳐져 있기 십상이다. 짧게는 새해 들어 지낸 보름 정도의 시간, 길게는 기억 속에 있는 삶의 전부를 하나하나 꺼내 볼 수 있다.
가슴이 아리도록 아프게 떠오르는 소재도 있고 피식하고 웃음 짓게 하는 소재도 있다.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는 아찔한 순간도 있고 겸연쩍게 웃음 짓게 하는 가슴 뿌듯한 그런 소재도 있다. 잃어버린 듯 캄캄하기만 한 그런 시간들도 분명 있다. 떠오를 듯, 잡힐 듯 아롱거리는 기억 속 자아를 하나하나 꺼내다보니 이 전각 저 전각에서 사시마지(11시에 올리는 예불)를 올리는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린다.
다가온다. 사색의 세상만을 탐닉할 수 없기에 현실로 발길을 옮긴다. 어려서의 사색은 자칫 사고의 편식을 가져다 줄 수 있고, 나이 먹어 노인이 되었을 때의 사색은 고독이나 외로움으로 변질되어 소외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청소년이나 노년층이 아니라면 찬바람 맞으며 눈 내린 산사를 찾아 사색의 삼매에 빠져보는 것도 인생에 남다른 여유와 즐거움을 줄 수 있음을 확신한다. 사색은 마음에 양분이 될 수도 있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상의 캔버스를 펼쳐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곳에 마음을 넣고 사색의 삼매경에 도전해 본다면 이 또한 삶에 지혜가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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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운문사에서 찍은 사진임 - 임윤수 기자) | ||||||||||||||||||||||||||||||||||||||||||
임윤수 기자님의 눈덮인 운문사 정경과 글입니다.
(들꽃풍경 자미원 게시판 파아란님이 올려놓은것을 퍼왔습니다)
흰 눈발이 엄청 펄펄 날리는 운문사의 하얀 설경에 사색의 발자국을 찍어내며 잠시의 정숙함에
잠겨나는 그 모습을 상상하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하얀 사색에 겨워합니다.
일상의 번뇌와 갈등...거기서 파생되는 자아(自我)의 혼돈을 인위적일지라도
하얗게 눈덮인 山寺에서 잠시 떨구어봄이 어떻느냐는 임윤수 기자님의 권면입니다.
엄청, 눈이 덮였습니다.
죄다, 온통 눈천지에 버거워 할정도로, 심지어는 100년만의 적설이라고도 합니다.
어쩜 혼돈속에 방황하는 뭇 서민들의 상채기와 설움을 단박에 하얀눈으로 덮어주는
하늘의 보다못한 어떤 조처가 아닌가 하고 내심 주억거리네요.
촛불의 정적은 깊어갑니다.
운문사의 하얀 설경사이로 따복따복 걷는 발자국을 상상하면서
가르스름하게 눈을 감아내어 어줍잖은 사색의 삼매에 잠시 갸웃해봅니다.
함께 거닐어 보시지요.
혹여, 고독이나 외로움으로 변질되어 다가서는 소외감이 있거들랑
여기 뜨거운 커피 한잔에 사르르 향을 담아내십시다.
헛허허허...그렇다는겝니다.
나도 저 이처럼 황룡사지 안으로 걸어가고팠는데..
2005. 3. 7. 자정이 넘어서는 分針을 보면서...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
음악 : Ce soir, je ne dors pas
오늘밤은 잠을 이룰수가 없어요- France G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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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rius ★2005.03.07 08:44 신고
답글
운문사의 일주문을 따라
한없이 걷고 싶은 마음 출렁입니다.
아마도 저만치 가던 계절이
아쉬움으로 되돌아 와 만들어놓은 아름다움이
또 한가닥의 그리움으로
시리우스 가슴에 징표로 남는다는 증거겠지요..
나풀대며 춤추듯 펄럭이는 하얀꽃의 안무처럼~~..
늘 그러하시듯
이 한주 언제나 다순 가슴이시길..
차 한잔 놓고 갑니다.
시리우스 마음 담은 그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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