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들꽃풍경(http://cafe.daum.net/DLFLScenery
제 목 : 잡지에 난 인터뷰 기사
글 쓴 이 : 안나
날 짜 : 2005/03/19 05:50:53
내 용 :
지난 2월에 인터뷰했던 잡지가 나왔다.
이제 1년이 지난 지금 이 기사를 보니까 느낌이 또 새롭다.
다시 또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지금쯤 내가 걸었던 그 길엔 여전히 동백이 떨어져 있을테고
끝없이 펼져진 마늘 밭도 여전하리라.
내가 걸었던 그 길들이, 산 구비들이, 바다가, 강물이 날 손짓한다.
나도 못말리는 내 역마살은 언제까지일까!
아마 저 세상 가서도 여기 저기 떠 돌아 다닐 것 같다.
65세에 홀로 국토 종단한 황경화씨
2천리 길 위에서의 고백성사 (글:유은혜. 사진:이찬수 프리랜서 사진가)
홀로 걷는 길은 외롭고, 서럽고,쓸쓸했다.허나 홀로 걷는 길은 한없이 자우로웠다.
6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 황경화씨는 고백성사를 하듯 2천리 길을 걸었다.
그리고 혼자 걷던 그 길위에서 넓어지고 순(順)해진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남녘의 보리밭도 보고 싶고, 봄볕 따뜻한 흙길도 걸어보고 싶어서요.
혼자 먼 길 걸으며 살아온 날도 정리하고 살아 갈 날도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왜 굳이 혼자 떠났느냐는 물음에 황경화씨(66세)에게서 돌아온 답은 담담했다.
작년 봄 그는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우리 땅을
원 없이 걷고.느꼈다.
2천리, 8백 킬로미터를 23일 동안 자신의 두 발로 걸었다.
걱정할까봐 남편한테는 산악회 사람들과 함께 간다고 하고 홀로 떠난 도보 여행이었다.
쉰 여덟에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 두고 받은 퇴직금을 들고 그녀는 가족
앞에서 일대 선언(?)을 했다.
이 돈만큼은 살면서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면서 세상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날 위해 쓰겠다고. 평생을 아내로 어머니로, 며느리로서 더 없이 충실했던 그녀였기에
가족들도 대환영이었다.
............ 자유로웠고, 딱 그만큼 외로웠다.
지리산 종주를 몇 번씩 거뜬히 해낸 그였지만 한 달여를 그것도 홀로 걷는 여행이란
녹록치 않은 일,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여행 플래너인 며느리가
함께 가겠다는 것을 극구 마다했다.
"주부가 한 달 동안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기가 쉽지 않은데.. 그게 얼마나
좋은 건데...걷고 싶을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쉬고, 편한 대로 자고 먹고.
그야말로 내 맘대로니까, 그 무한한 자유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마음 내키는대로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혼자 걷다 강가에 앉아
발을 담그고 그늘 좋은 나무를 만나면 달게 낮잠 한잠 청하고 다시 걸었다.
인적 없는 산길을 홀로 넘을 때, 들리는 새소리, 물소리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아침은 치즈 한조각과 건빵과 물로 때웠고,산길을 걷다 식당을 만나지 못해 오후
서너시가 되어서야 겨우 밥을 먹은 날도 허다했다.
이른 아침부터 혹사시킨 덕에 발은 물집이 잡혀 비닐 봉지에 물을 채워
넣은 것 같았다. 바늘로 터뜨리고 실을 꿰어서 물을 빼냈다.
나중에는 생리대를 신발에 깔아 가며 하루 40킬로미터 이상씩을 걸었다.
자유로웠고, 딱 그만큼 외로웠다.
"여느 사람들처럼 나도 일탈을 꿈꾸었지만, 저물녘 길 위에서서 오늘은 또
어디서 자나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서럽고 눈물이 나더라구요.
자유를 누리자면 고독과 쓸쓸함도 함께 견뎌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풍경
............ 길 위에서 마음이 짐을 내려놓다.
세상이 각박하다고,세상을 잔뜩 경계하고 나선 길에서 그는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찜질방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기꺼이 자신의 집에 데려가 편안한
잠자리를 주었고, 밥값을 받지 않은 식당 주인들도 여럿이었다.
국토 종단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된 대학생은 순창까지 달려와 저녁을 사주고,
지도에 색칠까지 해 가며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런 따뜻한 인연앞에서 누가 카메라를 빼앗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던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살면서 알게 모르게 마음에 남았던 아쉬움과 원망을 조금이나마 내려 놓았다는 것이다.
"대자연 앞에서는 사람이 경건해지고 정직해지는구나 느꼈어요. 월출산 계곡에
동백꽃잎이 떠 있는 걸 보면서 내 안의 힘든 기억도 저렇게 피 토하듯 토해내면
좋겠다 싶었어요.
길 위에서 지난 날에 대한 고백 성사를 한 것같아요."
영월 섶다리며, 월악산 송계 계곡, 평창강...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걸으면서 서툰 솜씨로 할미꽃도 찍고. 개불알 꽃도 찍었다.
나이 드니 훌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는 황경화씨,
그가 걸은 2천리는, 먼 거리만큼이나 진지한 자신과의 대화의 여정이었다.
"국토 종주가 끝나고 남편이 제가 걸었던 그 길을 다시 한 번 함께 가 보자고 해서
차로 다시 다녔어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데요.
혼자서는 날듯이 걸었던 오대산을 오르는데, 이 길을 어떻게 넘었나 싶을 만큼
힘든 거예요.
옆에 남편이 있으니 자꾸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죠.
그래서 국토 종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꼭 한 번 혼자 걷는 여행을 권하고 싶어요
여행 자체도 좋지만 스스로에게 정직해진 자신을 만날거예요."
올해 그는 또 다른 도보 여행을 꿈꾼다.이번엔 며느리와 함께
해안선을 따라 서해안에서 남해안을 거쳐 동해안까지 걷는 길이다.
그리고 홀로 떠났던 길에서와는 또 다른 충만함을 안고 돌아 올 것이다.
2005. 2.
덧붙임
며칠전 들꽃풍경 카페에 올려진 "안나"님의 국토종주를 취재한 기사입니다.
국민학교 교사를 천직으로 하여 정년퇴임하신 님은 길위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 놓고자 홀로 외로이 땅끝마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걸으셨습니다.
"자유로웠고, 딱 그만큼 외로웠다."고 하신 안나님의 여정은
차라리 숙연합니다.
국토종주때에 얻은 별명이 "마른대추"입니다.
사과나 복숭아는 쉬이 상하지만 마른대추는 마를수록 오래가고 단단하다는
농담에서 붙여진 별명이지요.
"여느 사람들처럼 나도 일탈을 꿈꾸었지만,
저물녘 길 위에서서 오늘은 또 어디서 자나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서럽고 눈물이 나더라구요.
자유를 누리자면
고독과 쓸쓸함도 함께 견뎌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오랜 연륜에 홀로가는 그길에서 깨달음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하겠습니다.
길따라 가는맘은 언제나 하염없지요.
문득 집시처럼 부랑하고픈 충동이 일렁입니다.
그분의 소중한 마음을 마음에 고이 담아두고파서
글을 옮겨 실었습니다.
2005. 3. 19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
홀로 자유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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