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임응식 사진전 2012.1.29.일
덕수궁....이태전쯤에 미술전시회때 들려본후 오랫만에 들려봅니다.
그간에 무어에 휘둘린듯 덕수궁 돌담길 한번 배회하지 못한터임에 겸사하여 들려봅니다.
이번 방문은 사진작가 임응식 선생님의 회고전 성격의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시회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길에 종로에서 보신각을 한컷^^
덕수궁 정문 대한문
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있어서 신기하게 구경하였습니다.
수문장 교대식 준비중인 모습
수문장 교대식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은 조선시대 왕궁에는 수문군이라는 군대가 있어 궁궐 문을 개폐, 경비, 순찰하는 업무 등을 수행하였으며영국 왕실의 근위병 교대의식과 비견되는 화려하고 품위 있는 한국전통 궁중 문화 재현행사 입니다.
수문장교대식후 기념촬영
저도 한컷^^
덕수궁 관람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은 원래 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1593년(선조 26)부터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611년(광해3)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여 주었다.
그 후 광해군은 1615년(광해7)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고 경운궁은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경운궁은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현재의 미국대사관저 건너편 서쪽에는
중명전을 비롯해 황실 생활을 위한 전각들이 있었고, 북쪽에는 역대 임금들을 제사 지내는 선원전이 있었으며,
동쪽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을 설치하여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고 이름도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궐내각사 일부와 환구단이 철거되었고 이 지역은 대한제국의 상징 공간으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다.
고종이 승하한 뒤 1920년부터 일제가 선원전과 중명전 일대를 매각하여 궁역이 크게 줄어 들었으며, 1933년에는 많은 전각들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일반에 공개했다. 이처럼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대한제국의 역사적 격변을 겪은 궁궐로 국난 극복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 중심이었다.
중화문(보물 819호)
중화전(보물 819호)
연혁:고종황제께서 1897년에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이어하시면서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셨으나 협소하였으므로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으셨다.
본래는 중층건물이었으나 1904년 4월 14일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으며, 정문으로 중화문이 있다.
용상과 닷집
투각곡병과 일월오악그림 병풍 앞에 어좌가 놓여있슴
위 사진속의 투각곡병이 도대체 어떤것인지.무얼 가리키는지 한참 헤맸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의아하고 신기한 용어나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는게 또한 재밌다^^
천정의 용龍
고종황제 초상
중화전앞 소맷돌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 화재시 사용할 물을 담아둔 솥모양의 "드므"
중화전에서 바라본 중화문 - 좌우로 품계석이 세워져있음
석어당
연혁: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고 190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같은 해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유일한 목조중층 건물로 선조(宣祖)께서 임진왜란 중 의주로 몽진하셨다가 환도한 후 이곳에서 거처하셨고
1608년 2월 선조가 승하한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인목 왕후가 광해군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며,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光海君)을 석어당 뜰아래 꿇어앉히고 인목왕후가 죄를 책한 곳 이기도하다.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아래층은 정면 8칸, 측면 4칸이며 상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임
즉조당과 준명당 (좌측건물)
햇살은 수백년을 묵묵하게....그 자리에....
덕홍전 (우켠에) 침소로쓰인 함녕전 (보물 820호)
덕혜옹주를 위한 유치원으로 활용되었다는 준명전
오른쪽끝 자격루 (국보 229호) 가운데 흥천사종 (보물 1490호)
정관헌
연혁:190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서양 절충식 건물은 고종황제께서 다과회를 개최하고 음악을 감상하시던 곳이며 한때 이곳에 태조(太祖)의 어진(御眞)을 봉안하였다.
(개방시간에 한하여 내부출입도 가능함)
'유현문(惟現門)‘은 오직 어진 이가 출입하는 문’이라는 의미다.
중명전(일반관람불가 사전 신청예약 관람)
위 건축물중 중명전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된 근대사의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1907년 4월 20일 이곳에서 고종황제로부터 친서를 받은 이준은 이상설 · 이위종과 함께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고 대한제국의 주권회복을 호소하였으나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일제에 의해 고종황제는 강제 퇴위 당하였다.
茶실(휴게실)
연못
석조전 (수리중임)
등나무와 미술관
주목
미술관에서 내려본 분수대와 중화전
덕수궁미술관
< 참고 >
1.대한문 2.중화문 3.중화전 4.즉조당.준명당 5.석어당 6.정관헌
7.덕홍전 8.함녕전 9.석조전 10.미술관 11.광명문 12.중명전
사진전시회 안내판
임응식사진전 - 탄생 100주년 작고 10주기 맞아
기간 : 2011. 12. 21 - 2012. 2. 12 장소 : 덕수궁미술관
임응식은
생전에 ‘한국 사단(寫團)의 개척자’, ‘한국 1세대 사진가’, ‘사진예술의 선각자’,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
‘사진계의 살아있는 역사’, ‘한국 현대사진의 선구자’, ‘한국 사진예술의 태두’, ‘한국사진의 대부’ 등 다양한 헌사를 받아왔다.
실제로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사진가로서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진단체를 결성하여 사단(寫壇) 형성에 힘써 온 행정가이자
교육자, 평론가로 활동해오면서 우리나라 사진제도의 기틀을 형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한국사진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활동해온 사진가였다.
명동, 명동사람들 전시관에는 당시 명동에 칩거 운집한 시인, 소설과 화가, 음악가등의 초상사진들이 게시되어있습니다.재미난것은 사진 옆에 해설내용이 통상적 소개가 아닌 명동백작 이봉구님의 소설 명동20년 에서나온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어놓아서 더욱 정감스럽게 다가왔읍니다.
그때 그 시절에.....명동거리 포토존저 뒷모습을한 아가씨의 얼굴을 보았슴다^^ ㅎㅎㅎㅎㅎ
예술사진에서 사진예술로 (1930년대~1960년대)
일제 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임응식의 초기 작품을 다룬 섹션이다.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수용·정착되고 제도화된 예술사진이 성행하다가 한국전쟁기에 들어서 기록사진의 성향을 띈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후(戰後)에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계열의 사진이 주류를 이르는데, 임응식의 사진 활동 역시 한국사진사의 전개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문화재와 예술가의 기록 (1960년대~1980년대 초)
2부는 임응식이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 사이에 작업한 고 건축 사진과 예술가들의 초상사진으로 구성되었다. 1960-70년대에는 한국의 전통과 미를 재발견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작업이 역사, 문학, 미술, 사진 등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임응식은 문화재 사진을 통해서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기록성과 예술성을 성취하고자 했다.
명동, 명동 사람들 (1950년대~1990년대)
3부는 임응식이 한국전쟁에 종군하여 폐허로 변한 명동을 기록하기 시작한 1950년부터 타계한 해인 2001년 직전까지 50년 넘게 촬영한 명동 사진을 다룬다. 임응식은 명동을 '한국 사회변화의 축소판'으로 보고, 역사·문화사적인 관점에서 하루하루 변하는 명동의 모습을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이 섹션은 주제에 따라 명동 풍경, 명동의 인물, 명동의 패션을 비롯하여 임응식이 주로 다녔던 명동 코스를 지도와 사진으로 재구성한 사진가 L씨의 명동 일일 등의 세부 파트로 구성된다.
임응식과 사진 아카이브
마지막 4부는 두 개의 소품전과 임응식이 남긴 유품 및 저서 등의 각종 아카이브 자료로 구성된다. 이 밖에도 임응식이 생전에 사용하던 카메라와 그가 저술하거나 참여한 교재와 서적, 임응식의 모습이 담긴 기념사진들을 함께 전시하여 그의 사진 활동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작 사진
(전시관에서는 사진촬영금지임. 인터넷 상에서 사진과 이미지를 퍼온것임
문제 제기시 즉시 삭제 하겠습니다)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서는길에
명동 아가씨의 뒤꽁무니를 따르면서.....
대한문
고종황제의 운구가 나간 문이며명성왕후의 장례식을 지켜본 문이며육영수여사의 장례길이었고노무현대통령의 분향이 이루어진 그 門입니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대한문 건너편 종로길(교보생명앞)에 있슴
세종로
역사 유적.....
우리네 역사를 함축하여 피부로 느낄수 있는 그것들의 현장이라고나 할까요.....
수세기를 이어온 침략과 침탈에 대한 흔적과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져 있으니까요.
특히나 근세사를 눈여겨 살펴보면 역사의 왜곡과 문화유산의 훼손들로 속이 좀 부글부글 끓네요.
그 시대의 현장에 잠시 머물러본 마음은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이번 덕수궁 방문은 사진전시회로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 사진제도의 기틀을 형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한국사진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활동해온 임응식 선생님의 사진에서 많은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특히 구직(求職)이라는 판때기를 가슴에 걸고 비스듬히 기대여 서있는 청년의 사진에서
지금 이시간에도 구직을 못하여 서성대는 요즘 젊은청년들과 중년의 좌절과 고뇌와 갈등을 봅니다.
오늘 뉴스에서 이슈가되어진 " 어느 40대 형제의 슬픈 동반자살" 기사가 자꾸 눈에 어른거리네요.
이름도 신푸르름이라 했던가......
2012. 2. 4.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
Close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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