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박4일 영월.정선.태백여행 4일차 )
오늘( 끝날 ) 의 여정
영월 상동읍 솔고개 소나무
영월 상동읍 김삿갓유적지. 거주지. 문학관
중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록. 수도권제2순환도로 (귀가)
만항재에서 내려와서 상경길에 영월 상동읍을 지납니다
상동읍의 신작로변..... 보수를 하여 말쑥한 건물도 있지만
예전 그 모습으로 그대로 남아져 있는 신작로변 건물들입니다.
그시절..... 마을 중앙통을 버스가 다닐정도로 지나는 길을 넓혀
그 길을 신작로라고 불렀던 기억입니다.
새삼스레 사전을 찾아보니 신작로( 新作路) 는 "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새로 만든 큰길 " 이라고 하니 제 기억이 맞는것 같습니다^^
읍사무소를 지나 석항쪽으로 가는길에
내덕리 삼거리에서 덕구리 방향 이정표를 봅니다.
오래전 이곳 덕구리를 지나 삼동재를 넘어 봉화 춘양면 우구치리 쪽으로 넘어가는
우구치재에서 길을 헤매어 혼쭐났던 기억이 다시금 떠 올려집니다.ㅎㅎㅎ
혹독하게 쫄았던 기억은 더 오래 가는가 봅니다 ㅎㅎㅎ

솔 고 개 솔 나 무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81-1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속리산 정2품소나무와 더불어 국내 3대 소나무로 유명한
솔고개 소나무 입니다. 아래 솔고개 소나무 내력을 보면 이 소나무는 단종이 승하한 후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고 그 혼령이 태백산을 향하던 중 이곳에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노송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배웅을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고 적혀 있습니다.
솔나무 뒤로 단풍산의 자태가 단단한 호위무사 같습니다.

솔표 우황청심원 의 소나무와 솔 담배의 솔 모델로
이미 알려져 있는 유명 소나무 입니다^^

이곳은 출장, 또는 여행길에 지나면서 가끔 보았던 솔나무 입니다.
오늘은 그냥 잠시 쉬어 마무르며 주변을 한바퀴 돌아 봅니다.
햇살이 투과되는 소나무가 또한 새롭게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오래된 소나무나 바위 그리고 어떤 흔적, 표시들에서
무언의 침묵속에서 경건해짐을 잠시 가져보기도 합니다.

예전에 수더분한 모습에 비해 말끔하게 단장을 하였습니다.
단종의 혼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것인지
솔나무에 념원을 정성스레 비는 두분의 아주머님이 계시네요.
도로 가에 솟구쳐 있는 바위(암벽) ...." 제비바위 마을유래 "
몇차례 지나 칠 때마다 힐끔 쳐다보기만 했던 도로변의 암벽입니다.
뭔가의 주술적인 사연이 있을법한 그런 그런 암벽입니다.
갓길에 차를 주차후 처음으로 요묘조모 살펴봅니다 ㅎㅎㅎ
인색한 마음에 제비머리 바위를 자르니 마을이 흉흉하여 졌다고....
인색하지 말고 베풀고 살아야 ..... 그래야 마을이 흥하고 귀인이 나타난다는
뭐 그런 정도의 유래 입니다^^
궁금함이 비로서 풀렸습니다 ㅎㅎㅎ

이제 집으로 귀가전 마지막 코스인
김삿갓 유적지(묘소) 와 주거지 답사는 3박 4일 여행의 마무리이자
"그곳에 가고 싶다 " 하여 오래전부터 마음의 이끌림이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김 삿 갓 유 적 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897-2
난고 김삿갓 유적지는 영월군 노루목에 위치한 유적지이다.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다.
김삿갓 유적지 내에 흐르는 곡동천은 기암괴석 사이로 맑고 풍부한 수량이 넘치고
가을에는 형형색색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 조선 후기 방랑 시인이자 천재 시인인 김삿갓묘소와 주거지가 있다.
김삿갓 계곡에서는 매년 10월 초에 " 난고 김삿갓문화큰잔치" 가 열린다.
2003년 10월 " 난고 김삿갓 문학관 " 이 개관되어 김삿갓의 문학세계를 한곳에
전시해 관광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안내글에서)
김삿갓마을 입구 조형물이 상징하는것은 ?
(궁금해서 네이버에 검색을 하니 )
아래 조형물은 김삿갓의 상징적 이미지(삿갓, 자유로운 영혼 등)를 형상화하여,
방문객에게 영월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출발점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마을 이름까지도 김삿갓면으로 바꿀 정도로 영월군에서는
상당히 신경을 쓰는 유적지인것 같습니다.

김삿갓 유적지 표지석

김삿갓 詩 와 조형물

난고 선생 유적비와 꼬마신랑

김삿갓 조형

김삿갓 묘소
시선 난고 김병연지묘 (詩仙 蘭膏 金炳淵之墓)
김삿갓의 방랑은 철종 14년(1863)에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면서 끝이 난다.
3년후 아들 익균이 김삿갓의묘를 영월(하동면 와석리 노루목)로 이장 하였다.
영월은 김삿갓의 방랑의 시작지이자 종착지가 되었다.

아래 사진은 2014년 ( 12년전 이네요^^ ) 방문시에 찍은 사진임

유적지는 김삿갓 시비와 조형물, 그리고 묘소가 있는 주변 을 말하고
거주지는 어머니께서 영월로 내려와서 자리를 잡고 생활하였던 곳으로
과거시험 볼때 까지 거주 하였으며 이후 집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였음
김 삿 갓 주 거 지
묘소에서 약 1.8km 곡동천을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올라감
아래 안내판에 김삿갓의 생애와 역적으로 몰려
이곳 영월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사연과
김삿갓으로 방랑하게된 연유가 세세하게 적혀 있음

사당에 모셔진 초상

대개 화전민들은 통나무를 이용해 주거지를 얼퀴설퀴 짓는 게 관례이지만,
이 집은 도끼로 짜서 정교하게 놓아 양반가문의 규수였던 김삿갓 어머니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화전민이 살았던 집인데 집 모양새를 보아 깃삿갓 주거지로 인정 하였다고 함

2014년 에 방문후 두번째 방문입니다.
유적지에서 주거지 까지의 거리는 약 1.8 km이며 40분 정도 걸리는것 같습니다.
그 때도 저 혼자 뿐이었는데...... 오늘도 혼자서 마루에 걸터 앉아 쉽니다.
졸음이 살포시 밀려드는 노란햇살담은 오후나절입니다.
지난번 방문시는 다소 시간에 쫓겨 그냥 다녀갑네 하여 사진만 찍고
되돌아 섰지만 이번엔 시간에 구애 받지 않으니 늘어지는 마음입니다.
다음에는 괴나리 봇짐에 이곳에 들러서 토담 마루에서 하룻밤 유하고 가볼 참입니다.
( 그랬으면 하는 맘이라지요 ㅎㅎㅎ )

유적지와 거주지를 돌아 보고서 문학관으로 향함

산자수려한 고산준령 풍운 속에 청운의 푸른 꿈을 접고 해학과 재치와 풍류로
한 세상을 살다간 조선 후기 방랑시인, 난고(蘭皐) 김삿갓(본명 병연(炳淵),
(1807~1863)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철수 판화
대동강 흐르는 물위로 새들 가고 오고
바람따라 나그네도 떠나거니.....

도서와 시집
금옥(金玉), 황녹차집(黃綠此集), 동국시(東國詩), 필휴집(必携集), 해동시선(海東詩選),
대동기문(大東奇聞), 대동시선(大東詩選) 등 김삿갓과 관련된 서적과
이응수 作의 김립시집 외 구한말에서 현대까지 각 서적, 간행물, 논문,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삿갓 짚신

김삿갓 연구에 헌신 하신분들

김삿갓을 만나는 길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두 분 있습니다.
한 분은 전국의 서당을 찾아서 훈장들이 전해주는 감삿갓의 시를 수집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알린 이응수씨이고,
다른 한 분은 “김삿갓의 무덤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의 양백지간,
영월과 영춘 어간에 있다”라는 고문서 기록 하나에 의지해 1982년
마침내 영월 와석골 노루목에서 무덤을 찾아낸 향토사학자 박영국씨입니다.
위 두분이 안계셨더면 김삿갓의 해학과 풍자....
그리고 선문답같은 詩들이 묻혀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잠시 멈추어 마음을 모두어 두분께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철수 판화

문학관 앞 타일벽에 김삿갓 일대기를 삽화로 그려놓음



방랑시인 김삿갓 / 명국환 노래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든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바람에 지치었나 사랑에 지치었나
괴나리 봇짐지고 가는 곳이 어데냐
팔도강산 타향살이 몇몇해던가
석양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김삿갓
매년 10월에 김삿갓문화제가 개최됩니다
김삿갓 문화제

김삿갓
닌고 김병연 의 가계및 생애
본관은 안동이고 서울 장동(壯洞) 출생이다.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이다.
김병연은 조선 후기 장동 김문(壯洞金門)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김병연이 5세 되던 해인 1811년(순조11)에 홍경래의 난이 발발하자 그의 조부였던 평안도 선천부사(宣川府使) 김익순(金益淳)은 반란군에 투항하여 적극 협조한 죄로 능지처참형을 받고 집안은 폐족(廢族)을 당하게 된다. 이후 1816년(순조16)에 김병연은 모친과 함께 영월(寧越)로 거처를 옮겼고, 이곳에서 김병연은 장수 황씨와 결혼하여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1824년(순조24)에 장자 김익균(金翯均)을 낳았다.
집안이 폐족 된 이후로 김병연의 부친은 남해로 유배를 갔다가 김병연의 나이 19세가 되던 해인 1825년(순조25)에 유배지에서 사망하였고, 이후 몇 년 사이에 김병연은 모친과 형제를 모두 잃게 되었다. 김병연은 다시 서울로 상경하여 이름과 출신을 속이고 서울의 유명 인사들과 교유하며 끊임없이 재기를 위해 노력하였지만 끝내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김병연은 서울을 떠나 삿갓을 쓰고 금강산 쪽으로 방랑길을 떠나게 된다. 그는 금강산을 시작으로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지역을 두루 방랑하였다. 고단한 방랑길에도 그는 집안을 재건하기 위해 지방 관아에 새로 부임한 관리와 친분을 맺고 벼슬을 구하고자 하였지만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1863년(철종14)에 57세의 나이로 전라도 화순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후 아들 익균이 김병연의 유해를 거두어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千里行裝付一祠 餘錢七葉尙云多 천리행장부일사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낭중계이심심재 야점사양견주하
나그네
천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 보니
주머니에 남은 돈이라곤 옆전 일곱닢이 전부이네
그래도 너만은 주머니 속 깊이 간직하려 했건만
석양 황혼에 술집앞에 이르니 어이 그냥 지나치리오
*떠도는 나그네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낭만적인 시이다.
지팡이 끝에 낡은 행장을 달아매고 동가식 서가숙 하는 나그네가
황혼 무렵에 찾아든 주막을 앞에 두고 여정을 푸는
운치있는 모습을 그려 볼 수있다.
가는길 하염 없고 오는길 여전 하더라 하여
깃삿갓선생의 길따라 가는 맘은 오늘도 휀한 바람에 날리네요
길마음이 처연하여 때론 한잔술에 꺼이 꺼이 울음을 삼키셨을수도.....
잠시나마 그 길따라 뒤따릅니다.
감히....시늉을 좀 내어 봅니다 ^^

위 사진은 김삿갓문학관내 셀프 촬영장 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도포, 삿갓, 부채, 지팡이 등은 소품으로 준비 되어 있으므로 의관을 갖추고
셀프 카메라 앞에서 폼을 잡으면 됩니다.
( 그런데 흰 수염은 소품에 없네요 ㅎㅎㅎㅎ )

김삿간 유적지와 거주지 그리고 문학관을 둘러보고서
이제 3박 4일간의 여정을 마무리 하고 포천으로 향합니다.
다소 꼬질 해진 행색 이지만 마음은 뽀송 합니다 ^^
2026 . 1. 17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
( 본문과 관련없는 댓글은 별도 보관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
청옥산 자연휴양림에서(2) 김삿갓 유적지 2014.3.28 (금) - 3.30 (일)
청옥산 자연휴양림에서(2) 2014.3.28 (금) - 3.30 (일) 3일차 서울 올라오는길에 김삿갓 유적지 (김삿갓 거주지) 둘러보다. 청옥산 자연휴양림을 나서서 칠량이 계곡과 솔마을 지나서 김삿갓면으로 향
piltong79.tistory.com
김삿갓에 대한 자료 참조
https://blog.naver.com/074098jms/224141499185
김삿갓의 지혜 - 인생의 지혜 작성자 초암 정만순
https://blog.naver.com/074098jms/22406517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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