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장군 묘소, 경혜공주 묘소 들러봄 - 출장길(고양) 이모저모 2017. 5. 30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에 있는 거래처 방문길에 약속시간이 부득이 지연되는관계로
기다리는 동안에 바로 인접한 대자동에 최영장군 묘소와 경애공주 묘소를 들렸습니다.
대자동에는 조선시대 왕자와 공주의 묘소가 꽤나 많고 연산군시대금표비, 영사정등 유적과
최영장군 묘소등이 있는데 이곳 대자동에 들리게 되면 최영장군과 경혜공주 묘소만 둘러보고 가게되네요.
길을 사이에 두고 묘하게도 마주보고 있는 묘소입니다.
그런데 경혜공주묘는 동네 안내판에도 나타나지 않아 보통으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영장군 묘소 가는숲길
약 600m 정도의 진입로는 경사도 완만하고 숲그늘이 이어져서 산책하듯 오르면 된다.
묘소 입구 오름계단
안내판 -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 이르신 어버이 뜻을 받들고
한평생 나라 위해 바치셨으니 / 겨레의 스승이여 최영 장군!
이 나라 이 겨레 바로잡고자 / 남으로 왜적을 물리치시고
북으로 오랑캐를 무찌르셨으니 / 장하다 그 이름 최영 장군!
요즘 이노래가 아직도 교과서에 있을까? .....?
제 기억으론 4-50년전쯤에 국민학교 시절에 음악책에 실려있어서 불렀던 동요인데.....
그리고 또 생각나는 최영장군 노래에 얽힌 웃기는 얘기....ㅎㅎㅎㅎ
여자애들(국민학교때이니까) 고무줄놀이 하면서 깡총 깡총 뛰면서 숨이 차도록 불렀던 노래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 전우에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아라~~ 이르신 어버이 뜻을 받들고~~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요즘엔 그런 원초적인 고무줄놀이는 거의 볼수도 없고 유치해서 노는애들도 없지요.
하지만 예전엔 고무줄 잘하는 아이가 꽤나 인기도 있었던....
머리높이의 고무줄을 외발로 껑충 걸어 제끼는 그 품새는 가히 입이 딱 벌어질정도였던 ㅎㅎㅎㅎ
요즘도 출장길에 고개마루 넘어가면서 "전우여 잘자라" 노래를 4절까지 곧잘 부르며 가는게
아마도 그당시 줄기차게 많이 들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려나, 격세지감이네요^^ 헛허허허
최영장군 묘소에서 웬 뚱딴지깉은 고무줄 노래로 빠졌습니다 ㅎㅎㅎㅎ
최영 장군의 묘는
쌍분으로 되어 있는데 윗묘는 아버지 최원직의 묘이며 아랫묘가 최영 장군의 묘이다.
아내인 유화부인과 합장되었다
그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최영장군이 "내가 부정한 짓을 하지 않았으니, 내 묘에는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최영장군의 묘는 1970년대까지 풀이 없는 적묘(赤墓)였습니다.
이후 호우로 흙의 유실을 염려한 후손들이, 흙과 잔디를 계속 갈아줘서 1976년부터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전하는데,
600년이 지나서야 최영장군의 한이 풀려서 이제사 풀이 자라난다고 합니다.
무속신앙으로 부활한 최영장군
최영은 장군신으로 부활했고 이성계는 최영을 죽인 악귀가 되었다.
조선 시기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무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받던 장군신 최영은 이후 한반도 무속인들 최고의 장군신이 되어
한반도 무속인의 반수가량이 ‘최영장군’을 자신의 몸신으로 모시며 그를 숭배하고 있다.
(최영장군은 무속신앙속에서는 수명장수, 안과태평安過泰平의 상징으로 가장 많이 신으로 숭배하는것으로 알려짐)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였지만 백성들에게는 잊혀진 인물이 되어버렸다. (인터넷에서 퍼온글)
참고로 우리나라 무속의 장군 중에는,
임경업장군,남이장군도 있지만 최영장군이 한국무속의 주용 장군신으로 모셔지고 있다한다
일반적인 영정사진
무속인들이 사당에 모시는 영정사진
(블로그 겨울섬에서 사진과 일부내용을 발췌하였습니다 --이의제게시 삭제하겟읍니다)
최영장군 묘소앞에 상석중에 코가떨어져 나간 석상이 보인다.
경혜공주 묘 (정종 묘)
경혜공주 묘소 로 오르는 숲속 오솔길
도토리 주으러 다닐만한 정도의 좁은 오솔길따라 묘역 가는길은 좀 너무하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오름길에 청순한 분홍꽃이 눈에 띕니다.
이 외진곳에 부러 다녀가는분들께 마치 경혜공주가 감사하여 마중나와 눈인사를 하는듯.....
수년전에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역-홍수현, 정종역 - 이민우) 드라마가 신드롬을 일으킬때
집사람이 그곳에 가고싶다하여 물어 물어 간신히 찾아왔던 기억이 나네요.
(이정표나, 작은 팻말 하나 없습니다.)
숲속 작은 산길을 거슬러 오르면 신도비가 하나 있고 그길로 조금 더 오르면
아래 사진처럼 숲이 조금 열리면서 묘소의 비석이 보입니다.
관리가 안되어 잡초가 많이 나있네요.
경혜공주
성공한 쿠테타라 할수있는 1453년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세조로 등극하면서
수양대군의 친형제인 안평대군, 조카이자 왕이었던 어린 단종, 그리고 경쟁자 김종서등이 멸살을 당하였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사육신의 난 이후 동생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당한채 영월로 유배를 가고,
남편 정종의 유배지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전라도 광주로 옮겨진다. 경혜공주도 역시 남편과 함께 동행하였다.
이듬해 단종이 죽임을 당한후, 그로부터 4년후에 정종은 공공연히 세조에게 반감을 품은 발언을 하고 다녔고,
결국 세조 7년(1461)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죄로 능지처참되었으며 경혜공주는 노비로 전락되었다.
이렇게 부모도, 동생도, 남편도, 모두 잃은 경혜공주는 당시 27살이었고 남편이 사형당할 때 임신중이었다.
노비로 전락한 경혜공주의 삶은 참 기구하였다 하겠다.
햇살이 뜨거워서 밀짚모자를 쓰고서 묘소를 한바퀴 돌아봅니다.
제가 묘소관리인 같지 않습니까? 헛허허허
누군가가 앞서간 분께서 붉은 꽃을 한다발 헌화하고 가셨네요.
비석마져도 한이서린 눈물자욱에 얼룩져있읍니다.
경혜공주 남편
영양위 정종(寧陽尉 鄭悰)은 세조 때 모반 협의로 능지처참을 당합니다. 영조 때 신원(伸寃)되었으며
영조34년에 영양부원군(寧陽府院君)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헌민(獻愍)입니다.
오른쪽 둥근묘가 경혜공주묘이며 왼쪽 작은 사각묘가 정종의 (시신이 없는) 가묘라 합니다.
노란색 애기똥풀 -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
최영장군과 경혜공주묘소에 다녀왔습니다
고작 틈새의 시간에 다녀 왔을뿐이지만 여러 마음이 교차되네요.
특히 다른 유적지의 유명한 묘소나 능을 방문 할때와는 다르게 이곳에 이르면 연민과 애잔한맘이 드네요.
웬지 그곳에 가서 위로와 위안을 마음으로나마 ....드리고 싶어서.
예전엔 한주일에 서너번을 외부출장을 다니며 전국적으로 돌아다니기를 오랫동안 그러하였는데
요즘엔 출장갈일이 예전 같지 않을뿐더러, 갈만한데도 줄어드네요.
뭐 그렇다고 섭섭해하는건 아니구요, 당연 이제는 그러함을 스스로 이해하니까요.
지난 직장에선 영업 직원수가 많으니 업무를 나누어 하였지만 지금 회사는
작은기업이라서 이런 저런일을 가려할만한 그런게 아니기에
오히려 제게는 잔 일거리라도 소소하게 많은것이 차라리 괜찮다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맑은 바람도 쐬어봅니다.
이 또한 이만한것만도 감사함이라 합니다.
헛허허허, 그렇다는겝니다.
2017. 6. 3. 정리 까망가방입니다.
P.S 참고
2011.10.8일 경혜공주의 묘소와 최영장군의 묘소를 다녀 오며......작성 내용
<a href=http://blog.daum.net/piltong/13715926>
-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답글
수 많은 오해 가운데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내 눈으로 보았을때는
분명히 지금 판단이 옳았는데
얼마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때 큰소리 치고
그에게 거칠게 말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랬나 후회를 합니다
몸의 상처 보다
더 아픈 것이 마음에 상처입니다
그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며
혼자서 가지고 있다
한 구석에서 흉터로 남아 버립니다
사랑해서 충고하는 말이
오히려 더 비수처럼 마음을 찌를 수 있습니다
모르면 차라리 말하지 마세요.
아니 내가 확실하게 안다 할지라도 기다리세요
지금 내가 안다고 하는 그것도
사실은 그에 대해서 지극히
일부분만 알고 있는 것과 불과 합니다 .>>>
벌서 즐거운 주말이네요 늘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 . . .
-불변의흙- -
손가락은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답글
접으면 주먹으로 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두 손을 내린채로
서서 서로를 붙잡지 못하고 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마음의 손에 달려있다.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세상을 바로볼 줄 알고
노래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인생에 참맛을 아는 사람이다.
-좋은 글 중에서-
정성스럽게 올려주신 자료
소중하게 잘보았습니다(^^)
징검다리 연휴가 이어지는
휴일을 잘보내고 계신지요.
화창한 휴일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시고 날씨
변화가 심하오니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2017.06.05 19:20 신고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답글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마음에 글을 놓았고, 글에 마음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그 글에 서로 만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그리움을 두고서 서로 다른 그리움이지만
너무나 같은 향기의 그리움이기에
우리는 서로 그 향기에 취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또하나의 이름앞에서 그 이름에 부끄럼없고자
그 이름에 상처없고자 어쩌면 어색할 수도 있는
순수함으로 서로를 만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아주 먼곳에서, 아주 가까운곳에서
우리의 거리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저 만남의 거리를 잊지않고서
추억속의 친구처럼 우리는 글을 전하며 만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그것이 어설픈 마음일지라도
그것이 초라한 마음일지라도
같은 마음이길 바라며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이길 바라며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마음부터 만난 우리 님들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집니다.
───▶ 。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는다는 망종 입니다.
싱그러운 초록기운 많이 받으셔서 활기한 한주 되세요!] -
고운님!
답글
│ と▶◀つ
│ ·☆ (* ^ ^ *) ☆·
│ ┏━━━━(.)━(.)━━━━┓ *
안녕하세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마실길을 나서봅니다.
님들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올리신 작품을 감상하며
문 열어 주심에 감사하며
고운 인연에 감사하며
그렇게 한참을 다니노라면
나 아닌 타인의 삶과 작품속에서 공감하며
즐거움도 선물받는 것 같습니다.
한해[旱害]가 심해 농심을 애태우지만
주시는 이도 전능자시요
취하시는 이도 전능자이시니
그 분의 자비하심이 임하시길 기도한답니다.
님의 가내에 평강을 빕니다.
늘샘 / 초희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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