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그리고 광화문 광장 둘러보기
서울은 역시나 서울입니다.
특별시민이 사는곳..... 때로는 좀 거시기 하기도 합니다.
우선 서울은, 서울시는 돈(예산)이 엄청 많은곳입니다. 어지간한 지방들은 감히 꿈도 못꾸지요.
서울 강남에서 유명한 고급아파트(메이커급 아파트^^) 한채를 팔면 전남 보성에서 20여채를 살수 있다는
뉴스(한국경제신문 2011.3월)를 본적이 있습니다..
예전 중앙집권적인 시절에는 정부에서 세금을 거두어 낙후되고 저 개발된 市, 郡지역에
상당액을 지원해주고 보조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요. 다만 예전의 그 기준이 아니고 많이 줄어들었다고 봐야겠지요.
내 고장에서 걷힌 세금을 우선적으로 그 지역민을 위해 쓰는것은 틀리지는 않지요.
특히 지금과 같은 지방자치제 중심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언젠가 이런 얘기도 술자리에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진.장" 세개를 합쳐도 서울에 한 동네만도 못하다는.....ㅠ.ㅠ
물론 단순히 숫자대념의 비교는 비교가 감히 될수는 없지요. 아마도 답답해 하는 소리라고 봐야겠지요.
(무.진.장.은 전라북도 무주. 진안. 장수군을 말합니다. 특정 지역을 결코 폄하하기 위한 이야기는 아님을 밝힘니다)
그래서 공기업이나 단체, 대학교, 굵직한 기업등을 자기 지자체로 유치 하기위해 그리도 애쓰는가 봅니다.
저도 중소도시에서 살다가 서울로 돈사러(^^) 올라온지 10년이 됩니다.
일할 자리(직장)를 그나마 서울에서 가질수 있어서지요.
그래도 몸뚱이는 서울이지만 마음은 아직도 소도시나 시골입니다.
지방 소도시에서 얼마간 일할만한 어떤곳이 있다면 봉급은 반(반보다는 쪼끔더 ^^)만 받아도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지요.
헛허허허, 그렇다는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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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서울 페스티벌 2011
일시 : 2011. 5. 5 - 5. 10
장소 : 여의도 한강공원, 광화문 세종로, 서울광장, 청계천일원
각설하고, 서울 페스티벌 얘기로 돌아갑니다.
서울에서는 서울 시민을 위한 각종 행사, 전시회, 공연, 놀이등이 이벤트로 수시 전개되고 공연됩니다.
덕분에 조금만 발품을 팔면 공짜^^로 괜찮은 구경과 관람을 할수있습지요.
페스티벌 기간에 유료로 티켓을 끊어 공연을 하는곳은 가보지 못했구요
그냥 전철타고 청계천 한바퀴 돌아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 구경하고 왔습니다.
서울 페스티벌 행사 안내 포스터
"봄 짓" 입니다.
청계천에서
시원한 분수벽
정조대왕 능행반차도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도자기 벽화로 제작되어, 장통교를 중심으로 물이 흘러가는 방향 좌측 옹벽에 설치되었다.
반차도(班次圖)란 그림이라기보다는 정보전달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도표로서, 궁중의 각종 의식 장면과,
행사에 참여한 문무백관이 임무와 품계에 따라 늘어서는 차례를 그림으로 묘사하여 기록한것이다.
이는, 당시 행사의 규모나 관원들의 배치상황 및 복장, 악대 구성 등 여러 가지를 고증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으며,
그림의 머리 글과 끝에는 행사 내역과 참가 인원 및 관직 등이 자세히 적혀있어 정확한 고증이 가능하다고 한다.
넓은 의미로는 실제 상황을 묘사한 풍속적 기록화라고도 할 수있을 것이다.(퍼온글)
용감하게 안그런척 하며 인물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에 사람이 들어가면 웬지 더 기분이 좋은데...... 실례될까봐 자제 하는편입니다.
청계천 도자기벽화 정조대뢍 능행반차도를 찍는척 하면서 함께 예쁜 젊은이를 모델로 ^^
땡볕이 내리쬐는 5월의 햇볕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갓을 쓰고 도포차림으로
열심히, 정성껏 설명을 해주시는 문화해설사님의 수고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네 역사와 자긍심, 그 이면에 숨어진 야사 까지도 재밌게 들었습니다.
청계천의 또다른 볼거리 광교 갤러리
이곳 광교 갤러리(광교 다리밑^^) 는 사진 전시와 작은 공연등이 연중 이어진다.
6.25 동란및 50년대의 생활상 사진 전시
야외전시 - 조형물
제목은 ...? ^^
너도 나도~ 종이배 소원
젊음의 낙서^^
애기똥풀이 배실 배실 웃는다^^
주체못할^^
그냥 가지 못하고 포옹을 하는 ㅎㅎㅎㅎ 외국인은 참 자유스럽네요.
깔깔깔 웃는 아가씨가 참 티없이 웃습니다.
광통교
청계천을 돌아볼땐 꼭 광통교는 찬찬히 살펴보았으면 합니다.정릉(신덕왕후능) 과 광통교에 얽힌 사연이 서려 있어서 발걸음을 무겁게 합니다.(청계천 22개 다리중 가장 역사적으로 보존된 다리임)
광통교 유래에 관하여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첫째 부인은
방우, 방과(정종), 방의, 방간, 방원(태종), 방연 등의 6남과
경신, 경선 등 2녀를 낳은 신의왕후 한씨인데 조선을 개국하기 전에 죽었다.
조선을 개국했을 때는 신덕왕후 강씨가 태조의 현비가 되어 사랑을 듬뿍 받았다.
신덕왕후 강씨로 말하자면 이성계가 젊었을 적에
어느 마을을 지나다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물을 청했더니,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급해도 천천히 마시게 했던 그 우물가의 지혜로운 젊은 처자다.
그녀는 권문세가에서 태어났고 태조의 집권 거사에도 참여했을 뿐 아니라
조선 개국 이후에도 배후에서 막강 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태조는 그녀의 소생인 방석을 세자로 삼기까지 한다.
이에 격분한 방원(태종)이 정도전, 방석, 방번들을 죽이고 왕자의 난을 거쳐 왕위에 오르게 된 점은 모두 아는 사실.
1396년에 신덕왕후 강씨가 죽었다.
신덕왕후를 사랑한 태조는 신덕왕후가 먼저 죽자 지금의 덕수궁 옆 영국대사관 자리 정동에
당시로서는 너무너무 화려한 무덤을 만들어 능호를 정릉이라 하고 흥천사(興天寺)를 세워 자주 행차했다.
도성안에 있던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은
제주목사 여의손(呂義孫)이 일류 석공들을 시켜 만들었던 문화재 급의 아름다운 조각품이었던
열두 개의 신장석(神將石 - 잡귀를 쫓기 위해 무덤에 둘러친 돌)으로 꾸며졌고 능역은 넓었으며 호화로웠다.
형제간에 죽고 죽이는 걸 본 태조는 살아생전에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 아들 태종과의 사이가 더할 수 없이 멀어지며 골은 깊어졌다.
1406년 태조 이성계가 죽자 태종은 당장 신덕왕후의 능부터 옮기기 시작한다.
당시 도성의 바깥이던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이장시켜버렸던 것이다.
태종은 정릉의 정자각을 헐고 목재와 석재는 각각 중국의 사신을 접대하던 태평관을 짓는데 사용했다.
홍수에 청계천 광교가 무너지자 열두개의 신장석을 다리의 밑돌로 가져다쓰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도록 했으며
그럼에도 모자라 묘석을 거꾸로 놓기까지 했다. 그러니 태조와 신덕왕후를 향한 태종의 애증이 어떠했을지 알 만하다.
이후 조선조는 태종 이방원 계열이 왕통으로 이어진 까닭에 그녀의 무덤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현종때에야 송시열이 종묘에 신덕왕후를 배향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2백년만에 왕비로 복권된다.
광교의 석재로 쓰이던 조선초 유적이 1953년의 복개공사 때 그대로 땅속에 묻혀 어둠속에서 잠자다가
올해 2005년 청계천 복원 공사가 끝나고서야 세상에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문화재급 신장석 일부가 바로 놓인 것보다 거꾸로 놓인 것이 더 많은 걸 보며 기이하고도 놀라워하다가
아무나 짓밟고 지나가도록 만들어버릴 정도로 태종의 마음이 편치 못했음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라는 걸 생각하며
왕족이든 천민이든 인생지사 다 그렇고 그런 것이고 옛사람이나 현대를 사는 사람이나
영욕의 한가운데 선 사람의 맘은 다 똑같다는 걸 느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정릉과 광통교의 관계가 잘 요약된 글이어서퍼옴것임)
(서울사대부고동창회 카페 달래님께서 게시한글 - 본 글에 대해서 이의 제기시 삭제 하겠습니다)
침묵으로....잠시 바라봅니다.
영욕의 세월을 견뎌온 신장석들이 묵묵하게 삭히듯 그 자리에 무게를 더하여 견디고 있습니다.
* 경진지평(庚辰地平) : 경진년(1760, 영조 36년)에 개천의 범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조는 큰 힘을 쏟아 개천의 바닥을 파내고 다리들을 보수하였으며, 준설 작업의 본보기로 삼기 위하여 다리 기둥에 새긴 ‘庚辰地平(경진지평)’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 항상 글자가 보이도록 토사(土砂)가 쌓이지 않게 하여 후대까지 홍수의 피해를 없애겠다는 의지에서였다. * 계사경준(癸巳更濬) : 계사년(1773. 영조49년)에 다시 준설했다는 의미.
계사경준 글자 좌측에 거꾸로된 신장석이 보임
정릉의 신장석으로 다리 석재로 쓴 광통교
정교한 당초문양과 새겨진 수호상은 문화적인 가치가 출
중하게 여겨진다.
정릉 신장석을 막돌쌓듯 다리 교각에 사용하였다.
신장석이 거꾸로 축대로 쌓여진 모습
위 사진 1점 - 산사애인님 블로그에서 퍼온사진임 (이의제게시 삭제 하겠습니다)
그 영욕을 아는지 모르는지....묵묵하게 서있는 광통교
청계천 단골 메뉴...저녁엔 조명이 들어와 더 휘황하다.
다리밑은 언제나 시원한 휴식처^^
물위에도 조형물이....
청계천 시작 장소
이곳에서 물을 퍼올려 아래로 내려보내는듯
마인극
사랑의 동전
전국 각지에서 모아진 동전을 분류하는 봉사단원들
광화문광장
광화문의 상징 -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
물장난, 물장구에 쫄딱 젖은 아이들....물놀이에 동심이 철벅철벅^^
내려보는 이순신 장군께서도 뿌듯해 하신다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야외공연 -퍼포먼스
먼 내용인줄도 모르지만 진지한 동작들이 이어진다.
지하광장및 전시실
비눗방울^^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장소 기념 브로마인드앞에서^^
세종대왕 기념 전시관 입구
세종대왕과 소현왕후 - 귀여우시다^^
충무공 이순신장군 기념전시관
거북선 모형
거북선 내부
임진왜란 해전도
◈와키자카의 독백
2천의 군사로 5만 이상의 조선군을 물리친 일본의 명장이
이렇듯 두려움에 떨 정도였으니...이후에도 와키자카는
여러번 이순신 장군님에대한 본인의 생각과 조선수군과
있었던 전투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흥미로운점은 와키자카가 쓴 내용에보면..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의 평가
러일해전에서 일본의 도고 제독이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자 세계는 깜짝 놀랐고 곧바로 도고 신드롬이 일어났다.
1906년 미국 해군사관생도들이 졸업여행 차 세계일주를 하던 중 도고를 방문했다.
해사 생도들이 “각하께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고 묻자
도고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16세기 조선왕국의 이순신 제독일세."
그 분의 무훈과 인품을 따를 만한 제독은 아직 없네.”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1905년은 일제가 ‘조선은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면서 강압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해였고, 도고가 이 같은 발언을 한 때는 바로 그 이듬해였기에 일본의 조야가 경악했다.
1907년에는 영국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도고를 방문했다.
그리고는 “각하와 넬슨, 그리고 이순신 제독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도고는 “나와 넬슨은 비교해도 좋을지 모르나 이순신 제독과는 비교하지 말게.” 라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국 국민들이 놀랐다.
자신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넬슨이 조선의 이순신에게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도고의 이 발언으로 이순신은 세계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해전 모형
청계천과 광화문 광장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사진을 정리 하면서 궁금한것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서 정리를 합니다.
"아....그런일이....세상에나.....그렇구나...."
여기저기 검색을 하면서 새삼 소홀하게 지나쳤던 것들을 공부해봅니다.
검색에 검색을 꼬리를 물고 하노라면 의외로 재미난 학습이 되네요.
진즉에 학교 다닐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 했더면 , 헛허허허허
아무려나.....
버스표 한장이면 이렇듯 아기자기하게 구경할수 있어서
역시나 서울은 특별 서울입니다.
그래도 아쉬운것은 물질적 팽창에 비하여 소박한 마음과 배려가
부족하다는게지요.
헛허허허, 그렇다는겝니다.
비유티풀 드림머 웨이컨 투미~ ㅎㅎㅎㅎ
2011. 7.6.. 지난 사진들 정리
까망가방입니다.
-
흐린날씨에 몸도 찌푸둥
답글
사진위에 아이들 물놀이하는 모습이
시원해보입니다.
시원한 계곡이 그립습니다.
문화적인 매력빼고는 굳이 서울에 살고픈 생각이 안들만큼 추어기에게는
서울이 답답한곳이란 생각이드는건 어쩔수가 없네요.
노후에는 땅에 씨뿌리고 가꾸며 살고프답니다.
무진장의 현실이 씁쓸하지만 민초들의 소박한 삶을 비교하면 초라하니
그냥 소박함에 만족하고 살아야할 듯합니다.
덕분에 서울구경 잘했습니다.
평안한 금요일 보내세요. -
지금의 서울..대한민국..코리아는 갸우뚱해도
답글
서우루..하면 잘아는 외국인이 많을 정도로 세계적인 도시지요.
비싸고 가치가 된다지만 서울시민 허리를 끊어집니다. 빚잔치하고 빚으로 공학하고 빚내서 하는 행정..
이런것들이 문제지요.재임시절만 지나가면 다음 시장은 손벌리고 구걸하러 다니고 하는 것들..
서울 역시 큰 건 인정하지만 미래 빚이 걸리는 도시.
그래도, 하이서울빠스티발 안의 풍경들은 그 시간차를 넘어서
즐거운 구경을 하게합니다.
웃기는 것중 하나가 광화문 광장을 지키는 순사들 .. 그 아래 돌판을 들고 갈 것도 아니고 이순신 그 님을 누가
메고 갈 것도 아닌데, 정복하고 시간차 순시를 하는 발상은 정말 세상의 코미디 같음이지요.
있어서 나쁠 건 없어도 좀 그렇지요.
Be
(갈매기의 꿈)
- Neil Dia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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