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 (임진강전투.적성전투) 에서
2015. 5. 14
임진강 전투
한국전쟁 중 1951년 4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임진강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적성전투(積城戰鬪)라고도 한다.
중국군은 임진강 하류의 유엔군 진지를 공격하였는데, 이는 1951년 3월 수복된 서울을 다시 점령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군 36개 사단과 북한군 1개 군단을 문산-화천 전선에 투입해 서울을 수복하려고 했던 그들의 춘계대공세는
임진강 전투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
임진강 전투가 벌어진 지역은 주로 영국군으로 구성된 29보병여단에 의해 방어되었다.
29보병여단은 영국의 3개 보병 대대, 벨기에의 1개 보병 대대, 지원 전차와 포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투 중 영국군은 미군과 필리핀군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중국군에 맞서 29보병여단은 이틀간
그 자리를 지켰다. 후퇴 명령을 받은 29보병여단 가운데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 750명은 퇴로가 차단되어
중국군 주력인 제63군 3개 사단 4만 2천 명과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였다. 5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병력으로 버틴 나흘은
세계 전쟁사에도 그 유례가 없는 영웅적인 투혼이었다. 글로스터 대대원중 탈출해 성공한 사람은 67명에 불과했다.
59명은 전사 526명은 포로가 되었다.
영국의 글로스터 시 이름을 딴 영국군 글로스터연대는
영국의 해외 참전 역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투혼이자 희생으로 기록됐다.
한국을 찾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1999년 4월)과 찰스 왕세자(1992년 11월)도 찾아 헌화하는 등
한·영 양국의 우정과 추모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기념비
영국군의 상징인 베레모 조형과 기념비
공원
글로스터셔 연대 병사
글로스터셔 연대 파병 기념사진
글로스터교
임진강 격전 약도 칸 중령십자가
아래 전투 약사를 읽어 내리며 뭉클한 전율을 느끼었다.
포위된 고립속에서 피를 흘리며 죽음과 두려움속에서 지켜낸 고지...방어선....
먼 이국땅 전장에 파병하여 스러져간 그들의 숭고한 뜻과 영혼에 잠시 묵념하며 노래를 불렀다.
전우에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사라져간 전우야 잘 자거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아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노들강변 언덕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 팔선 무너진다
피가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 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애국가는 4절까지 부르지 못하지만 위 노래는 4절까지 외워부른다)
설마리 고지 아래 - 설마리 전투 기념비
꽃이 마치 화관 같다.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에 인접한 조류들의 쉼터
이곳은 조류보호협회에서 운영하는 다친새들을 치료하여 방사하는 쉼터라 한다.
(입장 불가 사진 촬영불가)
먼발치에서 독수리 몇마리가 눈에 띈다.
추모공원을 돌아보고 나오는길에 다시 만난 글로스터셔연대 병사들
오고 가는길에 이런 저런 풍경 모음^^
쁘띠프랑스 전경
시원한 청평호수
청평댐
근래에 다시 외부 출장을 나서게 되어
가평 현장엘 다녀 오면서 들렀던 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 이다.
부러 찾아간것은 아니고 오는길에 팻말따라 들려본 그곳이다.
잠시 산책하듯 거닐어 추모의 마음을 드리며 맑은 햇살과 바람을 안아내었다.
2015. 5. 26 정리
까망가방하영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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