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 노무현대통령 49제를 기리며....
봉하마을-노무현대통령 49제를 기리며
2009년 6월 5일...현충일 전날,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의 위패가 모셔진 봉하산 정토사를 참배 다녀왔다.
부러 날잡아 방문한것만은 아니다. 친두들 계모임(년1회) 부산모임이 연이어져서 나름 시간을
조정하여 들려보았다. 한번은 인사드리고픈 마음에서.....
7월 10일이 49제일이다.
담담한 마음으로 다녀온 사진을 정리해본다.
가는길
청송지나는 고속도로
김해 진영 봉하마을 진입로
진입로 현수막
봉하마을
전면에 보이는 건물(노란벽)은 대통령 경호원과 비서관 숙소 업무실 이며
대통령 사저는 그 뒤켠에 작고 아담한 규모이다. 뒤에 보이는 암반이 바로 부엉이 바위이다
봉하마을 유품및 사진 전시장
문득....노대통령의 촌스런 모습이 떠올려진다.
너무나 소탈하고, 가식이 없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그래서 더 찡하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아래 사진(5컷)은 퍼온 사진들입니다 .
봉하마을에 설치된 분 향 소
조용히...조용히.... 가족끼리 오신분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직은 코흘리게 꼬마애가 두손을 모두고 큰절하는 뒷모습이
차라리 숙연스럽다. 그 꼬마둥이가 뭘 알까마는.....
봉하산 사자바위
봉하산 부엉바위
부엉이바위 앞 공터 (묘소가 들어설자리인듯...)
사진을 흉내내어 ( ) 자 다리로 한컷 찍다.
함께 하는 우리가 있으니 편한 맘으로 쉬소서.....
부엉바위를 곁으로 지나 사자바위, 정토사로 오르는 길
명복을 비는 노란깃이 끝없이 이어져간다.
부엉바위와 부엉바위 오르는 통로 (현재는 폐쇄되어있슴)
진영 봉화산 마애불
가부좌를 한체 깊은 선의 명상을 하는 모습
정토사 에서 바라본 봉하마을과 대통령 사저
(사진 에서 중앙 하단에 사각지붕이 사저및 경호원, 비서관 숙소)
(대통령 사저를 지으신 교수님의 일화)
(중략)그래서 교수님께서
농촌에 사는 것은 농촌의 숨을 쉬는 것이다.
밥 먹고 신을 신으시라. 불편한 집에서 사시라. 고 건의했대요.
대신 비는 안 맞게 해드리겠다.
규모요? 생활하시는 곳은 스물다섯평이 될까말까 한 곳이구요
중정이라고 해봤자 정말 손바닥만한 마당이구요
티비에 잡히는 것은 경호원과 비서관이 머무는 곳이예요.
처음에 교수님은 이들이 머무는 곳은 다른 곳에 지으려고 하셨대요.
아무래도 대통령님의 사생활도 있고 하니까요.
그런데 당신께서
평생 경호원과 비서관과 함께 지내야 하는 가족인데 왜 떨어져서 짓게 하느냐
행랑채처럼 따로 살게 하지 말라고 해 중정 앞에 지었대요.
교수님께서, 조중동에서 아방궁이라고 말도 안되는 비난을 할때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대요.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 하지마시라, 그들이 제대로 써주겠느냐.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도 그럼으로써 정 선생이 다친다." 이러셨대요.
(노화도 비행기조종사 블로그에서 퍼온글)
왜곡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歪曲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함. 이라고 적혀있다한다.
살아감이 더 낫살 들수록 친숙해져야 하는데 먹먹하고 헛헛 하기만 하다.
가진자, 기득권자를 의한 계급이 이젠 고착화 되어가는듯 하여 씁쓰레 하다.
정토사 관음상
손에 호미를 들고 계시는것이특이하다
영정이 안치된 정토사 수광전
방명록 기록, 무료로 제공하는 간식 커피 한잔에 쵸코파이를 두개 오물오물....
넘 오랫만에 맛보는 그 향긋한 행복함을 뉘 알랴.....하사품인냥 맛나게 ....
봉하산 팻말....
이쯤에서 숨을 잠시 삭히시며 "오늘은 이쪽으로 갈까?" 하고
씨익 웃으시는 모습이 떠올려진다. 산보길은 호젓하기만.....
가신님을 그리며....
보엉이바위 입구 작은 나무다리...난간에 노란풍선, 쵸코파이몇개, 그리고
노란 산국 한움쿰...담배 몇곽이...가신님을 사무치듯 묵묵하다.
참배 오신분들이 한개피씩 태워 드리는 담배 연기가 외롭고...고독하게 사루어진듯....
우러름과 존경하는 마음은 결코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생색을 낸다고해서
생겨나는것은 아닐것이다. 마음에 감동과 사랑으로 우러날때 나타날 것이다.
"노간지"....입속으로 웅얼거리며 한개피 태워 드렸다.
회연색 연기가 바람따라 할랑거린다.
수북한 꽁초와 잿빛으로 변하여진 재를 한참을 내려보면서 유서 한대목을 떠올려본다.
"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망종(6월 5일) 달이 중천에....
왜곡으로 점철된 임기 내내.... 고독하셨을 그분의 고뇌가
처연하게 떠오르는 망종 달에 더욱 애잔하였다.
2009년 7월 10일이면 49제 날이다.
덕수궁앞과 전국 여러곳에서 추모행사가 이어질것 같다.
무난하게 충돌이 없이 잘 치러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9. 7. 5. 일
까망가방입니다.
p.s
제가 찍은 사진외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퍼온 사진들은
지적하여주시거나 삭제요청시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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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셨나보죠? 정치를 제대로 분석할수 있는 눈이있다면.. 노통이 재임중에 어떤일을 했는지 제대로 아신다면, 이렇게 노통의 죽음에 목을 매고 게시지는 않으실텐데. 한가지만 들죠. 국민들이 그리 반대하던 현금퍼주기를 고집해 결국 우리 목에 핵무기란 사시미칼로 돌아오게 한 반역짓은 아무리 너그럽게 그를 평하려고 해도 참기 어려운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의 죽음은 미화하고 애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할 짓일 뿐입니다. 중국인들은 (좀 혹독하게 말한다면) 돈 00하다 걸려 검찰조사를 받자, X팔려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마지막 남은 <염치?>를 지켰다, 고 했다던데.. 노통이 하나 잘한게 있다면, 죄를 지은것을 마지막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한 점입니다. 물론 나로선, 그가 결정내렸던 재임중 여러 사안들-핵지원도 마땅히 포함- 에 대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죽었다면 그를 용서할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반성하지 않고 도망치듯 ..가버렸는데, 대체 무엇을 애모하고 추도한단 말입니까. 어쩜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호국영령들 앞에 무릎꿇고 머리조아리고 있을 사람인데, (다른 호국영령들을 놔두고) 그만 추도한다면, 대체 우리나라의 기강은 어찌되는겁니까. 이런 점들을 잘 헤아려 행동 하시는 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답글 -
하양까망님의 잔잔한 설명에
답글
절로 함께 걷는 느낌입니다.
이곳 독일에서도 7월 10일,
3대종단이 중심이 되어 프랑크푸르트에서
노무현전대통령의 49재 추모제를 가지기로 했답니다.
천주교의 신부님, 원불교의 교무님
그리고 개신교의 목사님이 사이좋게
그분의 49재에 그분과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 조명하는 계기를 만들어본다 하니
이것 또한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비록 님은 가셨지만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민주주의를 키워갈 상록수로 남았으니
영원히 그분은 우리 가슴속에 있는 것이지요
하양까망님의 모습도 그곳에서 뵈니
더 청년같으시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