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문학관....춘천길에
김 유 정 문 학 관
지난 1월....하순 어느날에 춘천길 다녀왔습니다.
경춘고속도로 가평휴게소 氷벽에서 잠시 휴식하면서.
업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길에 소양강. 소양2교를 지납니다.
다리 건너편에 소양강처녀 동상이 있는 수변공원입니다.
소양강처녀 동상
소양강 처녀는 예나 제나 그모습 그대로인데
나만 나이 꼬박 들어간다....ㅠ.ㅠ ㅎㅎㅎㅎ
춘천길에 간혹 지나치는 김유정 문학관입니다.
경춘선 전철로 들려본다면 의외로 간편하기도 합니다.
청량리에서 경춘선 전철-->대성리-->청평-->가평-->강촌--> 그리고 김유정역
사람이름이 역으로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라 하네요.
원래는 신남역이었는데, 김유정을 기리기위해 춘천시에서 역이름을 바꾼듯 합니다.
(옛) 김유정역 - 경춘선 폐쇄로 이젠 운행치 않음
한적한 간이역이자 이젠 폐쇄된 작은 역사이다. 그래도...더 정감이 가는맘을 어쩔수 없다네요.
새로 건립된 경춘전철역 - 김유정역
소설가 김유정 (金裕貞, 1908∼1937)
김 유정
출생지 : 강원 춘천
주요수상 : 서울시 문화상(1965)
주요저서 : 《소낙비》 《금 따는 콩밭》 《동백꽃》 《따라지》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제적처분을 받았다.
그때 김유정은 당대 명창 박녹주에게 열렬히 구애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하여 야학운동을 벌인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고향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1933년 처음으로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다. 이어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1등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써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활발히 작품 발표를 하고,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다.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그의 작품은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것인데
《금 따는 콩밭》은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 것이고,
《봄봄》은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린 그의 대표적인
농촌소설이다. 그 밖에 《동백꽃》 《따라지》 등의 단편이 있다.
김유정 생가와 문학관
김유정 생가 안내판
" 동백꽃 " 중에서
점순이는 "나"에게 구박받은데 대한 앙갚음으로 수탉을 데리고와 나의 암탉을
못살게 군다.....그 내용을 희화한 브론즈 조형물이 인상깊다.
감자 세알을 건넨 점순이의 마음을 - 어쩜 그것은 점순의 은근한 고백같은게 아니었을까....-
감히 "나"는 뿌리쳤다는데서 토라진 점순이와의 갈등이 소설의 줄거리 같다.
당시 1936년대에..... 쥔집 딸이자 소녀인 점순이가 먼저 사랑을 표시 하였다는것이
그 당시로서는 감히 라고 할수 있기에 상당히 의외로 보여진다.....
“닭 죽은 건 염려 마. 나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졌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의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알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유정 <동백꽃> 중에서
생가 이모저모
김유정 문학관
문학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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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에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며
좋아하는 아이에게 심술이 나서 그 남자네 닭과 자신의 닭끼리 싸움을 붙여놓는 점순이며,
그런 마음을 몰라주고 자꾸만 오해속에 헤매는 주인공의 모습에 미소가 번진다.
요즘처럼 동심을 잃은 아이들이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요즘은 이런 순수한 모습을
어린아이에게서조차 발견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씁쓸함마저 번지는 이야기다...
동백꽃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은 남쪽 해안에 피는 상록교목의 붉은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의 꽃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 혹은 산동백이라고 불러왔다.
「정선아리랑」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의 올동박이
바로 생강나무 노란 꽃이나 까만 열매를 의미한다.
대중가요「소양강처녀」의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에
나오는 동백꽃도 생강나무 꽃이다. 김유정은 소설에서, 붉은 동백꽃과 구별이라도 하려는 듯이
‘노란 동백꽃’이라 표현하고 있다. 당시 강원도의 동백꽃이 생강나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을 것인데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라고 꽃 냄새를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소낙비>에서 남편에게 줄 이원을 위해
이주사에게 몸을 허락하는 춘호처와 그 이원을 해오라며 이주사에게 몸을 팔러 보내는 춘호의 모습.
그래도 끝내 돈해온단 소리에 정다워진 춘호의 모습,
고생만 시키고 옷한벌 못해준 아내의 자는 모습을 안쓰러이 바라보는 춘호의 심정,
자신에게 고분해진 남편의 모습에 그래도 좋다고 생글생글 웃는 춘호처의 모습은 짠하기 그지없다.
<봄봄>에서 품삯한푼 받지 않고
일을 하면 데릴사위가 되게 해준단 말에 묵묵히 일하는 주인공의 모습역시 한마디한마디는 웃기지만
그 안에서 묻어나는 애잔함도 있다. 돈한푼 안받고 일하는 대신 딸이 크면 주겠다는 말에 주인집에서 일한지
사년이 되가건만 주인은 언제나 아직 딸이 덜 자라 못준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서낭당에 돌을 올려놓고 점순이의 키좀 크게 해주면 담엔 떡 갖다놓고 고사를 드리겠다 치성을 몇번이고 해보았는데도 소용이 없다. 개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크는지 애간장이 녹는 주인공을 보자니 웃음이 터진다.
요즘 세상에 이런 젊은이가 있다면 모두들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하겠지.
아니지 악덕주인으로 고발시사프로그램에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책속에서나 있을수 있는 일이라서 그런가
더욱더 지어낸 이야기처럼만 느껴지지만 그 순수한 마음만은 닮고 싶어진다.
<땡볕>에 나오는 가난한 부부의 이야기는
기어코 눈시울을 시큰하게 한다. 땡볕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 아픈 아내를 지게에 지고
서울병원까지 가보았건만 끝내 돈이 없어 손도 못써보고 그냥 되돌아오는 길. 마지막이라 생각되어 덕순이 아끼던 돈으로
아내에게 얼음냉수며 왜떡을 사주자 아내는 자신이 죽더라도 해야 할 일들을 덕순에게 일러준다.
사촌형님께 쌀 두되 꿔다 먹은거 잊지 말구 갚아라, 임자옷은 영근 어머니더러 사정얘길 하고 좀 빨아달래라.....
아내를 지게에 지고 되돌아오는 발갈음이 얼마나 무겁고 휘청거렸을까나.....뭉클함이 차라리 속상하다.
만무방 신문연재
김유정역 바로 근처 실레마을
(문학관 바로 건너편)
이벤트와 공연, 그리고 전시 판매도 하는 실레마을 전시관
평일, 늦은시간 이므로 휑한 바람에 기척일랑 없이 정적만 고요하다.
『총각과 맹꽁이』『소낙비』『노다지』『산골』『동백꽃』『만무방』
『금따는콩밭』『안해』『가을』『두포전』 등이 모두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쓰여진 것들이다.
강촌길
지나는길에 그길은...... 빨려들듯이 강변길로 홀연히 달립니다.
강촌역
위
지난번에 들렸을적엔 강촌역에 철로 레일이 남아져 있었는데.....
지금은 말끔히 철거되어(걷히어져) 휑하게 여운니 메아리만 울립니다.
아래
아직은 경춘선 옛철길과 교량이 남아져 있으나....어쩜 머잖아 철거될지도....
아님, 관광용으로 추억을 곱씹을수 있도록 남겨둘지도 모르겠지만.....
백양리역
인근에 민가라고는 없는....그곳, 정적이 깃들뿐인 그 우람한 시멘트 교각사이로
작은 나무 하나가 여전히 그 자리를 우두커니 지켜 서있습니다.
교각밑에서.....한개피 사루어 망연함을 정적에 침잠시키는....
" 담에 또, 지나거들랑 보자구나" 혼잣말을 웅얼거리며 백양리역을 뒤로하고 서울길로 나섭니다..
(위글중 "동백꽃", "봄봄", "소나기", "땡볕" 단평 내용은
"다시읽는 동백꽃 - 김유정" 에서 변덕마녀님의 글을 부분 부분 옮겨 적음 )
시대적으로 일제의 압제가 심화되고,
개인적으로 실연, 가난,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작가의 작품 세계는 김유정만의 독자적 미의식이 구축되어 있다.
또한 당시에 동인으로 활동한 불우한 천재인 이상과 김유정.
그들은 서로의 거울이었고 서로의 작품을 존중하고 연모하였다.
시대를 대변한 그들의 작품을 보며 착잡한 마음 감출수 없다.
그리고 그 시대가, 지난한 살이가 무엇보다 아프다.
1937년 이상과 김유정은 이땅에서 나란히 사라졌다.
김유정은 3월29일 스물아홉의 나이에, 이상은 20일 뒤인 4월17일 스물일곱에 죽었다.
둘은 폐결핵에 꽁꽁 묶여 있었다. 이상은 20세 무렵부터 각혈을 했고, 김유정은 25세때 발병했다. 이상의 폐병은 그래도 느릿느릿하게 진행되었지만 늑막염과 치질까지 앓았던 김유정은 속도가 빨랐다.
식민지라는 시대적 좌절아래 죽음의 늪으로 차츰 빠져들어가는 그들이 광기와 열정으로
생명의 불꽃을 태워 만든 것이 바로 소설과 詩였다.
(위글은 인터넷에서 발췌하여 덧붙여 편집한 글임)
춘천길에
소양강, 의암호, 김유정문학관, 강촌역을 정리하면서
"김유정 문학"에 대해 새삼 살펴보았습니다.
1930년대 일제하에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죽지못해 사는 군상들. 강원도 사투리와 걸죽한 입담, 욕설.
그러나, 그의 이야기속에는 웃음과 해학이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그 척박함을,한恨을, 속박을 웃음으나마 풀어내려 했던 걸일까요.....
학창시절에 읽으며 느껴던 그것에 비해 한참 세월이 지난뒤에 만나본 그 작품들에서
애잔함과 질박함을 가슴으로 보듬어 냅니다.
2012. 2. 26. 일.
까망가방하양필통입니다